박상병 정치평론가

최근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통합당이 처음으로 민주당을 역전했다.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실시한 8월 2주차(10~12일) 주중 잠정 집계 결과, 통합당 지지도는 전주보다 1.9%포인트 상승한 36.5%를 기록했다. 반면에 민주당 지지도는 1.7%포인트 내린 33.4%였다. 두 당의 지지도 격차는 3.1%포인트다. 물론 오차범위 내의 근소한 우세이긴 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통합당이 민주당 지지도를 앞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이 시점에서 그 의미를 짚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통합당 지지율이 민주당을 넘어 선 것은 한마디로 ‘반사효과의 결과물’이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고 민주당 행태에 분노한 민심이 대부분 통합당 지지로 돌아섰다는 뜻이다. 그것이 여야 지지율 역전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민주당 지지의 외곽을 지키며 통합당에 적대적이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왜 통합당 지지로 돌아선 것일까. 그것은 최근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행태에 대한 반감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민주당에 대한 ‘견제심리’가 급속하게 발동됐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이대로 두면 큰일 나겠다’는 심리가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다.

유권자들의 견제심리 발동은 선거정치의 판세를 바꾸는 결정적인 변수가 되곤 했다. 특정 정당의 오만하고 방자한 행태는 선거정치 국면에서 ‘역풍’을 불러오는 동력이다. 그것이 견제심리가 발동되는 과정이다. 각 정당의 선거 전략도 대부분 여기에 집중돼 있다. 정책이나 인물보다 ‘프레임’이 선거정치의 승패를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된 것도 이런 이유다. 합리성보다 비합리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선거정치에서 특히 ‘이미지 정치’를 강조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제왕적 대통령 중심제를 바탕으로 사실상 양당체제가 견고하게 뿌리내린 한국의 선거정치 지형은 크게 보면 ‘제로섬 게임’의 논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혹자는 ‘축구 경기’와 비슷하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우리 실력이 좋아서 승리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상대방의 실책과 자책골로 승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번 여론조사 결과가 딱 이런 현상이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잇단 자책골, 그 결과 통합당 지지율이 드디어 1등을 했다는 설명이다. 통합당은 그 자리만 지키고 있었는데도 이긴 셈이다.

상대방 실책으로 인한 그 반사효과에 힘입어 지지율을 끌어 올릴 수 있는 정당체제, 사실 그것은 정당정치의 왜곡이요 동시에 민주정치의 비극에 다름 아니다. 상대방을 향한 끊임없는 비난과 반대, 저주가 오히려 지지율 상승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는 대화나 타협, 협치가 근원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의 민주당과 통합당의 관계가 이렇다. 말로는 대화나 협치를 언급하지만 그것은 이미 구조적으로 어렵게 돼버렸다. 민주당이 거대 여당의 힘으로 마냥 밀어붙이는 태도, 통합당이 힘으로는 맞설 수 없자 끊임없이 ‘반대’를 반복하면서 정부의 발목을 잡는 행태가 딱 그것이다.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는 정치환경, 그것은 이미 정치가 아니다. ‘전쟁’에 다름 아니다.

한국의 대통령 중심제는 거대 양당체제를 끊임없이 확대 심화시켜 왔다. 그 사이 민주당과 통합당은 ‘전쟁상태’를 반복하면서 그들만의 정치 기득권세력으로 지지기반을 구축시켜왔다. 이른바 ‘적대적 공생관계’가 돼 버렸다. 이제는 그들의 기득권 체제를 흔드는 것조차 어렵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강고한 양당체제를 흔들기 위해 도입됐던 ‘연동형 비례제’가 그들에 의해 어떻게 짓밟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민주당이나 통합당은 똑같은 정치 기득권 세력에 다름 아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 특히 청와대를 향한 최근의 민심은 생각보다 훨씬 험악해 보인다. 비단 부동산 정책의 실패 때문만은 아니다. 국민의 눈높이를 헤아리지 못하는 문재인 대통령, 민심을 메치는 청와대 참모들의 코미디 같은 언행, 게다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의 인사행태 등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만들고 있다. 흡사 노무현 정부의 말기 행태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특히 민주당의 안하무인식의 독주는 실망을 넘어 절망에 가깝다. 그마저도 성과가 있으면 다행이다. 그러나 자중지란에 좌충우돌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이건 나라냐’고 묻고 싶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과 민주당 행태에 분노한 민심은 급히 ‘대안’을 찾았다. 통합당이다. 왜 통합당이냐고 물을 필요는 없다. 통합당 외엔 다른 대안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제3지대 정치는 이미 죽어버렸다. 정의당도 역부족이다. 통합당은 이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일찌감치 다당체제의 싹을 잘라버리고, 거대 양당체제의 기득권을 유지하려했던 이유인 셈이다. 통합당 전략대로 지금 그렇게 되고 있다. ‘반사효과’가 온통 통합당으로 집중되고 있다. 통합당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지지율이 오른다. 여권의 실책에 따라 당분간 지지율이 더 오를 수도 있다. 게다가 통합당의 액션까지 전향적으로 변한다면 지지율 역전은 더 계속될 수도 있다. 적대적 공생관계가 빚은 거대 양당체제의 코미디 같은 현실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통합당 지지율 1위를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는 얘기다. 당장 낼모레가 선거일이라면 몰라도 반사효과의 시효는 그리 길지가 않다. 길어야 한 달이다. 앞으로 민주당 지도부가 바뀌고, 청와대와 국정 변화가 가시화 된다면 통합당 지지율은 한 순간에 훅 날아갈 가능성도 높다. 어쩌다가 ‘의문의 1승’은 가능하다. 그러나 실력으로 얻은 지지율이 아니라면 그것은 ‘거품’에 다름 아니다. 통합당은 지금 웃을 일이 아니다. 국민은 지금의 이런 통합당을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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