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팬데믹을 만든 이후 우리의 일상은 미처 마음을 정리하기도 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선은 사람을 멀리하고 모바일을 가까이한다. 단순한 표현이지만 실상 그 간격은 ‘전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는 암호처럼 들린다. 흔히들 말하는 ‘코로나 이후의 세계(AD:After Disease)’가 과연 어떻게 변할지, 이에 따라 우리의 일상은 또 어떻게 달라질지 불안과 두려움이 팽배하다.

이런 변화가 단순히 일국적 상황이 아니기에 그 변화의 크기와 수준, 그리고 속도는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어쩌면 국제질서를 비롯해 경제와 산업, 노동과 복지, 문화와 보건 그리고 우리네 삶의 방식까지 ‘총체적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말 그대로의 세기적인 ‘패러다임 시프트’가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살아남기 위해, 또는 살아남은 이들은 새로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거의 모든 부문에서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전투적인 대결구도가 펼쳐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거대한 전환기의 생존투쟁 방식은 선의의 경쟁이 아니다. 갈등과 분노의 골이 깊을수록 마치 전쟁터 같은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곳에서는 분열과 증오, 편견과 저주의 바이러스가 더 위력을 발휘한다. ‘적과 동지’로 갈라진 세상에서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참으로 끔찍한 세상이 눈앞에서 펼쳐질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최근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의 비극은 여러 가지를 시사하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백인도시, 아니 인종차별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 포틀랜드가 시위와 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백인 경찰의 폭력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규탄시위는 벌써 몇 개월째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는 세 아이 앞에서 총에 맞은 흑인 제이콥 블레이크 사건을 계기로 상황은 더 험악하다. 일각에서는 포틀랜드 사태가 사실상 내전에 가깝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틀랜드 사태를 더 수렁으로 몰아넣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정치꾼들이다. 인종차별 규탄시위가 벌어지는 그 중심부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출동하면서 사태가 격화되고 말았다. 지난달 29일에는 트럼프 지지자 한 명이 총에 맞아 죽었다. 상황이 이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차별에 분노하는 시위대를 향해 ‘테러(domestic terror)’라고 규정하며, 법대로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분열과 증오, 분노와 편견의 바이러스를 무차별적으로 뿜어내면서 자신의 선거운동에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처한 비극적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에서는 전광훈 목사가 다시 전면에 나섰다. 코로나 치료를 마치자마자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며 ‘순교’할 각오가 돼 있다는 등 분열과 증오, 분노와 편견의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에 뒤질세라 전 목사를 따르는 일부 교회들까지 나서서 방역당국을 폄하하고 조롱하는 행태를 일삼고 있다. 오죽했으면 문 대통령까지 나서서 “국가방역시스템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자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비판했을까 싶다. 이 시대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외쳤던 교회,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그 교회가 지금 우리 사회에 얼마나 끔찍한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는지 그들은 잘 알고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법치의 엄중함이 정말로 필요한 곳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파업 중인 의사들을 빼고 의료현장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위로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자 이를 놓고 여론이 또 갈라졌다. 의사들은 ‘편 가르기’ 한다며 발끈했고, 국민의힘은 ‘국민 갈라치기’라고 비판했다. 우리 사회가 이미 두 동강 난 듯 진영대결의 논리는 대한민국 전체를 갈라치기 하고 있다. 이 와중에 파업에 나선 의사들의 행태도 좋게 만은 볼 수 없지만,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진영대결은 지겹다 못해 역겹다. 대통령이 의료현장인 전장을 떠난 의사들까지 격려하는 것이 옳은가. 전장의 최일선에서 헌신하는 간호사들을 격려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코로나 이후’를 걱정하는 국민들은 공공의료의 시급성에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뚜렷한 대안도 없이 반대만 외치는 일부 의사들의 행태는 기득권세력의 ‘철밥통 지키기’와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

그리고 ‘약자와의 동행’을 약속한 김종인 비대위의 국민의힘은 이번에도 약자인 환자나 국민 편이 아니라 특권세력에 다름 아닌 의사들 편이었다. 의사들이 떠난 의료현장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환자들, 그런 환자들을 바라만 보는 가족들의 눈물부터 먼저 헤아렸어야 했다. 끝까지 환자들 곁을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을 먼저 응원했어야 했다. 그것이 약자와의 동행을 내건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번에도 문재인 정부와 싸우고 있는 의사들 편이었다면 결국 ‘반문연대’의 낡은 정치 셈법에 사로잡혀 있다는 뜻이다. 지난 총선에서 궤멸적인 참패를 당하고서도 통합당은, 아니 국민의힘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 김종인 위원장의 치열한 변화 노력이 자칫 노(老) 정치인의 ‘원맨쇼’ 같이 비춰질까봐 그것이 걱정될 정도이다.

요즘 우리 사회의 갈라진 분열의 틈을 파고들어 온갖 악성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무리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일부 언론들의 보도행태는 이미 절망의 단계마저 넘어섰다. 그런 언론이 왜 우리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되묻곤 한다. 게다가 온갖 음모와 모략, 증오와 저주의 막말을 쏟아내는 메시지와 동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아무리 혼용무도의 사회가 됐다지만 이는 시비의 문제를 넘어서 범죄 수준에 가깝다. 음모와 모략, 분노와 증오의 악성 바이러스를 원천 차단할 수 있는 엄중한 법 집행과 좀 더 성숙한 정치적 리더십이 시급히 요청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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