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정치권력을 둘러싼 치열함은 대부분 도덕성 문제로 직결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보다 하위 단위인 법적 정당성 문제로 연결되기 일쑤다. 정치가 현실을 고민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거대한 동력이라면, 그 바탕은 마땅히 도덕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현실에 대한 성찰과 미래에 대한 설득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권자인 국민이 정치적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도덕적 가치’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적 선택과 도덕성이 사실상 별개의 것이라면 문제는 전혀 달라진다.

한국정치를 도덕적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옳으냐의 논쟁은 여전히 큰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치가 도덕적이지 못하다거나 도덕성과는 차원이 다른 영역이어서가 아니다. 유권자인 국민이 도덕성에 둔감하기 때문인 것은 더욱 아니다. 핵심은 정치적 선택에 있어서 도덕성 문제가 개입할 수 없도록 구조화 돼 있다는 점이다. 양극단의 진영대결, 한국정치를 양분하는 거대한 프레임이다. 거기에는 대화보다 대결, 협치보다 대치, 논쟁보다 정쟁이 더 익숙하다. 합리성이나 도덕성이 끼어들 작은 공간마저 없다. 오직 ‘적과 동지’만이 거대한 프레임의 승패를 좌우할 뿐이다. ‘도덕성의 빈곤’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최근 민주당이 내년 4월 재보선에서 서울특별시장과 부산광역시장을 공천할지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전 같았으면 두말할 필요도 없이 공천했다. 보궐선거의 귀책이 민주당에 있지만 그것은 그대로 수용하되, 공당으로서의 공천은 다른 문제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민주당 당헌(제96조 2항)에 따를 경우 귀책사유로 인해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규정은 2015년 민주당이 야당일 때 당시 문재인 대표의 의중이 반영된 ‘문재인표 혁신안’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4월의 재보선은 그로부터 1년쯤 뒤에 치르게 될 20대 대선의 전초전이다. 동시에 문재인 정부의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서도 매우 중요한 분수령이 될 수도 있다. 서울과 부산 등 광역단체장 선거가 포함되면서 판이 매우 커졌기 때문이다. 만약 민주당이 당헌 규정대로 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 어떤 현상이 벌어질지는 명확하다. 한마디로 지지세력 분화와 중도세력 이탈이 가속화 될 것이다. 반대로 통합당 지지층은 더 단단하게 결속할 것이다. 드디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여 통합당이 승리할 경우 자칫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을 걱정해야 할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후유증은 그대로 차기 대선으로 이어지게 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주당 안팎의 고민이 클 수밖에 없다. 당헌을 따르자니 핵심 지지층이 울고, 당헌을 버리자니 국민적 신뢰가 우는 격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신뢰’를 강조하며 애써 논쟁을 더 촉발시켰다. 이 지사는 정치는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며 “장사꾼도 신뢰를 위해 손실을 감수한다”고 했다. 명시적으로 무공천을 말한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민주당 당헌대로 가야한다는 얘기를 한 셈이다. 원칙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특히 도덕성을 기준으로 볼 때 이 지사의 판단은 더 큰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그러나 도덕적 명분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항상 정치적 승패의 잣대가 되진 않았다는 것이 한국정치 현실이다. 특히 ‘적과 동지’라는 편가르기식 대결정치는 대부분 도덕성이나 합리적 상식을 무참하게 짓밟아 왔다. 대신 편법과 꼼수가 난무하고 무차별적 막말과 저주의 담론이 쏟아졌다. 꼼수가 ‘신의 한 수’로 돌변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도덕성 파탄이 ‘선거전략의 묘수’로 탈바꿈하는 것도 시간 문제였다. ‘우리 편의 것’이라면 그것이 정의요, 그것이 전략이요 또 그것이 ‘정치적 올바름’이었다. 실제로 그것이 선거에서 성공한 사례가 수두룩하다.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지난 21대 총선에서 거대 양당체제의 대결구조를 혁파하기 위해 도입된 ‘연동형 비례제’의 운명이 이를 압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폭력까지 행사하며 연동형 비례제를 막은 통합당, 그 마저도 여의치 않자 따로 비례용 ‘꼼수 정당’까지 만들어 총선에 임했다. 결과는 통합당의 비례용 꼼수 정당이 1등을 차지했다. 이에 뒤질세라 꼼수에 비틀기까지 동원해서 만든 민주당의 비례용 꼼수 정당은 2등으로 선전했다. 대신 당의 존망을 걸고 단식까지 불사하며 연동형 비례제 도입에 나섰던 정의당과 민생당 등은 최악의 결과를 맞았다. 결국 핵심은 ‘도덕적 명분’이 아니었다. 그 무엇을 하든 ‘우리 편의 것’에 표가 집중되고, 지지층이 양쪽으로 결속하는 행태는 진영대결의 최대 동력이라는 점이 거듭 확인됐다는 점이다. 비극이지만 이 또한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공천문제에 접근하는 민주당의 고민은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도덕적 명분’에 집착하는 것은 정치현실을 모르는 ‘하책’으로 전락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헌을 바꿔서라도 ‘정치적 실리’를 확보하는 것이 ‘상책’이다. 물론 국민적 신뢰와 도덕성 시비는 집권세력의 상처가 될 수 있지만 그 또한 정치적 실리에 비하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다. 반대로 국민적 신뢰와 도덕성 운운하다가 내년 4월의 재보선을 망친다면, 곧바로 문재인 정부가 레임덕으로 빠질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정권재창출’은 요원하다. 아니 그렇게 되면 집권세력 지지층마저 표가 아니라 ‘돌’을 던질 수도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서생적 문제의식은 좋지만 정치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먼저다. 그것이 리더의 자질이다. 아직까지는 한국정치에서 ‘도덕적 명분’은 너무 높다. 굳이 마키아벨리의 고민을 언급할 필요도 없다. 현실은 언제나 도덕보다 비열하고 이상보다 냉정하다. 민주당이 공천하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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