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정치가 정치답지 못하면 남은 것은 ‘법’밖에 없다. 말이 말로써 소통이 안 되니 법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의 실종이요, 민주정치의 비극이다. 정치가 제 자리를 지키지 못하면 정치 바깥의 다른 영역도 온전할 수가 없다. 가는 곳마다 상식이 붕괴되고 음모와 편견, 적대와 저주의 독설들이 판을 친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 사회도 이와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전쟁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뿐이다.

한 풀 꺾이던 코로나 사태가 재확산 되면서 모든 것이 뒤틀리고 말았다. 일부 교회와 극우세력들이 이 와중에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는 것부터 상식 밖이다. 정부와 방역당국, 서울시의 거듭된 호소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대규모 집회를 열고야 마는 사람들, 우리 사회가 맞닥뜨린 참담한 자화상이다. 물론 어디든 이런 부류가 없겠냐마는 우리의 경우는 심해도 너무 심하다. 마치 무법천지 같은 전쟁터에 다름 아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교회를 팔고, 또 일부는 일장기까지 들고 나와 선열들의 피눈물까지 팔았다. 말이 말로써 소통이 안 되는 현실이다. 결국 그들은 코로나 재확산의 결정적 계기가 됐고, 일부 핵심 인사들도 줄줄이 감염됐다. 사태가 이렇게 확산될 줄 알면서도 집회를 허용한 판사의 판결은 비극의 마중물이 되고 말았다. 시대에 눈감은 까막눈이 아니라면 납득하기 어렵다. 또 ‘법리’가 어떠니 하는 궤변에는 부끄럽다 못해 절망적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어떤가. 지난 26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는 또 여야 정치공방이었다. 코로나 재확산의 주범이 어디냐를 놓고 한 쪽은 광화문 광복절 집회를, 반대쪽은 정부의 방역실패를 꼽았다. 광복절 집회의 그 비극을 뻔히 알면서 정치권은 또 ‘네 탓 공방’인 셈이다. 정치가 아니라 전쟁터에서나 볼 수 있는 ‘적대감’이다. 민주당은 광복절 집회의 절차적 정당성과 법적 책임을 강조했어야 했다. 통합당은 광복절 집회의 부당함과 그 참가자들을 향해 즉시 방역당국에 협조해야 한다는 말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아니었다. 국민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하는 심각한 현실 앞에서도 네 탓 공방만 벌이는 정치는 더 이상 국민의 것이 아니다. 민주정치를 언급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일 년 반쯤을 남기고 있다. 역대 정부였으면 벌써 레임덕 현상이 곳곳에서 표출될 시점이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문재인 정부의 국정혁신 기조는 여전히 살아있다. ‘습관성 반대’에 빠진 통합당과의 무한 정쟁이 반복되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기조가 흔들리거나 무기력한 정부의 모습은 아니다. 국정 지지율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그럼에도 견고해 보인다. 아직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통합당에 대한 기대치가 여전히 낮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임기 말 현상, 즉 대통령 권력의 레임덕을 의식한 각 집단들의 이해관계가 분출하기 십상이다. 따라서 통합당과의 협치는 사실상 어렵다. 특정 집단의 이익이 침해될 경우 벌떼처럼 달려드는 일도 더 많을 수밖에 없다. 대화로 문제를 풀려는 시도를 포기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말이 말로써 소통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옳은 길이라면, 국민이 바라는 일이라면 흔들림 없이 혁신의 기조를 밟아야 한다. 특정 집단의 이익에 휘둘리면 될 일도 안 되는 법이다. 법치의 엄중함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임기 말 법치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법이다.

최근 광복절 집회에 나섰던 일부 참가자들이 보이는 언행은 상식을 넘어 거의 범죄 수준이다. 방역 당국을 속이는가 하면 아예 도피하거나 저급한 음모론도 서슴지 않는다. 심지어 방역 요원들을 조롱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이들을 옹호하면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확산 시키는 유튜버와 언론인들도 적지 않다. 구상권 청구를 비롯해 법치의 엄중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이것을 놓치면 스스로 레임덕으로 빠지고 만다.

코로나 재확산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이 와중에 대한의사협회를 비롯해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섰다. 의사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하지만, 지금은 의사들이 행동에 나설 때가 아니다. 명분도 약하다. 공공의료를 확대해야 한다는 것은 그들도 잘 안다. 의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지방과 시골엔 의료시스템 자체가 고갈된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특단의 대책이 시급히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의사들의 밥그릇을 빼앗으려는 것이 아니다. 위기의 시대에 위기의 본질을 서둘러 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모색이다.

그러나 의사들의 행태는 참으로 실망스럽다. 스스로 감옥에 가겠다거나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마저도 우습게 여기고 있다. 정부의 거듭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의료 현장을 떠나거나 업무개시 명령을 받지 않겠다며 아예 휴대폰마저 꺼버리는 추태까지 보이고 있다. 심지어 일부 의대생들은 오는 9월 1일로 예정된 의사국가시험을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과연 이들이 국민의 건강을 책임진 의사인지, 또 이들이 학생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의사들마저 무소불위의 집단적 권력을 쥐게 되었는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럴수록 정부는 정말 단호하게 행동에 나서야 한다. 의사들의 합리적 주장은 경청하되, 무리한 주장은 확실하게 잘라내야 한다. 감옥에 가겠다는 사람은 가게 해야 한다. 의료현장을 떠난 의사들은 이번 기회에 떠나게 해야 한다. 그리고 국가고시를 거부하겠다는 학생들에겐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면 된다. 좌고우면하거나 스텝이 꼬이면 그들이 내민 밥그릇에 더 많은 것을 내줘야 한다. 임기 말, 자칫 혼용무도(昏庸無道)의 세상을 기획하는 무리들이 곳곳에서 발호할 가능성이 높다. 법치의 엄중함으로 일벌백계의 의지를 확고하게 보여야 할 것이다. 그래야 촛불이 아직도 꺼지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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