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류호정 원피스가 반가운 이유
[정치평론] 류호정 원피스가 반가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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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정치의 절반은 메시지다. 권력과 권력이 충돌하고 손익이 나뉘는 정치현장에서는 상대방의 의도와 전략을 읽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협상과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손자병법에 나오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는 만고의 명언이다. 그렇다면 상대를 어떤 방식으로 알 수 있을까. 그 중에서도 상대방의 메시지를 분석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통의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물론 메시지는 언어 외에도 행위나 몸짓, 상징 등의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된다.

정치인의 메시지 가운데 ‘상징(symbol)’은 아주 매력적인 소통방식이다. 말보다 간명하지만 그 해석은 천차만별이기에 ‘정치적 상상력’을 제공하는 강력한 무기다. 정상회담에 나선 지도자들의 의상이나 넥타이 색깔 등을 통해 서로의 전략과 회담 결과를 예상해 보는 분석도 이젠 낯설지 않다. 특히 여성 정치인의 경우는 상징의 수단이 더 풍부하다.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의상의 종류도 많지만 그 색상은 더 복잡하다. 게다가 구두와 액세서리까지 더하면 웬만한 전문가들도 ‘해석 불가’에 가까울 만큼 난해하다.

보수의 전통이 강한 영국의 최근 사례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지금은 불명예 퇴진한 상태지만 2016년 테레사 메이(Theresa May) 총리는 대처 이후 26년 만에 여성 총리가 됐다. 브렉시트 문제로 정국이 아주 불안정한 상태였지만, 당시 60세가 된 메이 총리는 파격적인 패션으로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곤 했다. 형형색색의 의상은 물론이고 민소매 옷이나 보기에도 부담스런 큰 목걸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뺏기에 충분했다. 그 뿐이 아니다. 엘리자베스 여왕과의 회동 때는 가슴을 반쯤 드러낸 의상을 입기도 했다. 메이 총리가 이전부터 ‘패션의 아이콘’으로 불리긴 했지만 브렉시트 논란으로 우울하고 지쳐버린 영국 사회에, 그리고 전망이 매우 어두웠던 보수당에 던진 그 상징의 메시지는 ‘새로운 바람’이었다. 누구도 그런 메이 총리의 패션을 비난하거나 조롱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한 시선으로 메이 총리의 모습을 지켜봤다. ‘상징’이 갖는 정치적 힘이라 하겠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에 출석하면서 입은 분홍색 원피스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 찬반 논쟁이 펼쳐지고 있다. ‘적절치 않다’는 얘기부터 ‘국회에서 일하는 것과 복장은 상관이 없다’는 주장까지 갑론을박이다. 심지어 ‘술값 받으러 갔느냐’는 모욕적인 얘기까지 들린다. 이에 대해 류 의원은 “국회가 일하는 곳이고 여느 곳과도 다르지 않다”며 “양복과 넥타이로 상징되는 권위주의와 국회 관행을 깨고 싶었을 뿐”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류 의원은 분홍색 원피스라는 상징을 통해 정치적 메시지를 분명하게 보여 준 것이다. 그 메시지는 적절할 뿐만 아니라 신선하다.

국회의원들은 동료 의원들을 부를 때 툭하면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댄다. 존경은커녕 서로 막말과 저주의 말폭탄을 주고받으면서도,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늘 ‘존경’ 운운하는 상투적인 인사로 시작한다. 과연 국회의원들끼리 서로 존경하는 동료가 몇 명이나 될까. 그리고 국민이 존경할 수 있는 국회의원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많아야 손꼽을 정도이다. 그럼에도 서로가 서로를 존경한다며 ‘셀프 권위’를 갖다 바친다. 국민이 들을 땐 개그 수준이다. 권위주의와 선민의식이 빚어낸 ‘언어 오염’에 다름 아니다.

류호정 의원은 ‘반란’을 일으키고 싶었던 게다. 다들 근엄한 듯 앉아있지만 속물들보다 더 속물적이고, 국민의 대표라고 말하지만 국민의 눈높이에도 이르지 못하는 ‘정상배들’이 우글거리는 그 본회의장에서 꽉 막힌 소통의 벽을 허물고 국민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제발 위엄 있는 척, 고상한 척, 잘난 척 하지 말고 일 좀 하라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류 의원이 보여준 분홍색 원피스는 기성의 ‘꼰대 세대’에 대한 저항이며,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예비하는 발랄한 도전이다. ‘상징의 정치’치고는 참으로 유쾌하고도 발랄하다. 그래서 분홍색 원피스가 더 반갑다.

혹자는 말한다. 국민의 대표가 모여 있는 ‘민의의 전당’에 분홍색 원피스는 너무 천박하지 않느냐고 말이다. 기껏 뭇 사람들의 시선이나 끌어당기는 그런 ‘쇼잉’이 과연 국회의원으로서의 적절한 품행이냐고도 따지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 할 수 있다. 검정색 양복이나 정장을 입고서도 거친 말싸움이나 주고받는 그런 국회의원들보다 몇 배나 더 보기가 좋다. 검정색 양복이나 정장을 입고서도 국회 본관 복도에 떼로 드러누워 소리를 질러대는 그런 국회의원들보다 열 배나 더 품격이 있다. 검정색 양복이나 정장을 입고서도 아스팔트 위에 드러누워 색깔론을 퍼붓는 그런 국회의원들보다 백 배나 더 위엄이 있다.

류호정 의원이 던진 상징의 메시지는 당분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건강한 담론’을 던진 셈이다. 한 인격체의 의상을 놓고 찬반 논란을 벌이는 것 자체가 후진적이다. 그동안 어둡고 칙칙한 사람들의 언행은 사실 ‘국민의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국민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그들 자신의 이익에 복무하는 전형적인 ‘양두구육의 정치꾼’이었다. 검정색 양복과 정장은 그들의 상징이었다. 그들이 내세운 위엄과 권위는 그들의 잇속을 은폐하는 담론이었다. ‘개고기’를 숨기는 언어의 도구였다. 이제 그 벽에 구멍이 뚫린 셈이다. 천 길 둑도 개미구멍으로 무너진다(千丈之堤 潰自蟻穴)고 했다. 구태에 찌들고 기득권에 매몰된 우리 국회에 류 의원의 분홍색 원피스가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오는 ‘상징’이 됐으면 좋겠다. 이젠 류 의원도 그 상징에 맞는 일을 해야 한다. 상징은 언제나 콘텐츠가 풍부할 때 더 빛나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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