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문재인 정부 집권 4년 차가 뒤숭숭하다. 4년 전 촛불을 들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외쳤던 많은 사람들이 이젠 지쳐버렸다. 이제 4년 차면 뭔가 손에 잡히는 확실한 것이 있으련만, 새롭기는커녕 자고 나면 아파트값에 성추행 얘기다. 그나마 코로나 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하나 싶었는데, 이마저도 재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국민의 인내심이 거의 임계점에 다다른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여론조사 결과도 딱 국민의 시선 그대로다. 지난 광복절 직전에 나온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취임 이후 최악’이다. ‘40% 철옹성’이 무너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와 함께 민주당 지지율까지 통합당에 역전됐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이쯤이면 전체적으로 당·정·청을 아우르는 여권에 대한 국민의 시선은 싸늘하다 못해 비관적인 것으로 봐야 한다. 특히 집권 4년 차에 받은 최악의 지지율은 그 자체만으로도 ‘레임덕 현상’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 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4년 차의 위기를 그대로 레임덕 현상으로 보기엔 어렵다. 지지율이 지금은 최악이라고 하더라도 ‘반전’의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실패를 거듭한 부동산 정책도 조만간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으며, 이른바 ‘K-방역’이 더 힘을 받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8.29 전당대회’를 통한 민주당 지도부의 전면 교체와 함께 정부와 청와대의 인적쇄신이 현 상황을 전향적으로 이끌어 낼 수도 있다.

반면에 통합당은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고군분투는 하고 있지만 ‘이미지 메이킹’에 다름 아니다. 당 지도부 몇몇을 제외하면 대부분 조용하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얼마나 진정성 있는 당 혁신이 이뤄질지는 불투명하다. 가만히 있어도 오르는 지지율은 가만히 있어도 빠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거품’이다. 이런 식으로는 유능한 ‘대안정당’이 되기 어렵다. 한마디로 문재인 정부 4년 차를 레임덕으로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없다는 뜻이다. 무능한 야당의 존재가 얼마나 큰 변수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20여 개월을 남긴 현 시점이 어쩌면 국정개혁의 성과를 만들어 낼 마지막 ‘골든타임’이 될 수도 있다. 조만간 가시화될 당·정·청 인적혁신이 그 신호탄이 될 것이다. 지금 구체적 성과를 보지 못하면 더는 기회를 찾기 어렵다. 내년 4월 재보선과 그 이듬해의 대선 일정을 감안한다면 지금이 적기인 셈이다. 이를 위해서는 청와대의 정책 조율기능이 극대화돼야 한다. 지금까지 일궈온 텃밭에서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무엇부터 거둬들일 것인지는 ‘전략적 사고’가 중요하다.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정부 부처의 일부 개각도 불가피하다.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강한 의지는 구체적인 인물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부에 대한 신뢰의 기본이다. 그리고 새롭게 구성될 민주당 지도부는 법과 제도의 구축을 통해 여권 전체를 이끌어 가는 견인차가 돼야 한다. 청와대와 정부를 향해 쓴소리, 곧은 소리 아끼지 않으면서도 끝내는 민심을 보듬어야 할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당·정·청이 최근 보여준 언행은 실망을 넘어 절망의 수준에 가깝다. 180석의 거대여당을 만들어 준 국민에게 보여준 그들의 언행은 국민의 상식 밖이다. 적절한 단어는 아니지만 이른바 ‘내로남불의 정치’가 딱 맞는 표현이다. 어느 때부턴가 한국정치를 조롱하면서 그 심층부를 관통하는 단어처럼 사용됐던 표현인 ‘내로남불’, 지금 문재인 정부의 여권 행태가 이렇다는 뜻이다. 이 또한 ‘진영정치’가 만들어낸 무차별적 패거리 싸움의 결과다. 우리 편의 실수는 ‘로맨스’, 상대방인 적들의 실수는 ‘불륜’으로 몰아붙이는 식이다. 거기엔 이성과 상식, 도덕과 양심이 설 공간은 없다. 오직 내편과 네편만 있을 뿐이다. 내로남불이라는 정치적 조롱은 그 산물이다. 결국 통합당도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반박은 하나마나 한 얘기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표방했던 민주당만큼은 그렇지 않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문제로 청년들의 우려와 분노가 고조됐을 때 여권은 이를 ‘가짜뉴스’ 탓으로 돌렸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비보가 들렸을 때는 박 시장을 감쌌다. 윤미향 의원의 부적절한 언행이 도마에 올랐을 때도 윤 의원 편을 들었다. 심지어 윤 의원을 향한 합리적 비판마저 토착왜구세력을 돕는 것이라며 싸잡아 비난했다.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이 커질 때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향한 집단적 공세를 쏟아냈다. 윤 총장의 처신이 옳다는 얘기가 아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정부와 여당이 검찰총장을 난타하는 행태는 상대방을 ‘불륜집단’으로 몰아세우는 내로남불의 행태에 다름 아니다.

국민은 특히 청년들은 문재인 정부의 강한 공정성과 좀 더 높은 도덕성, 좀 더 선명한 정의로움을 바라고 있다. 촛불로 지켜내고 싶었던 가치가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편만 감싸고도는 행태는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도덕성을 짓밟는 것이요, 정의로움을 배신하는 행태다. 그래서 ‘내로남불의 정치’는 지지층은 물론 대부분의 국민을 절망케 한다. 아직도 시간은 많이 남아있다. 여론은 얼마든지 다시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내로남불은 안 된다는 점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달 말이면 민주당 새 지도부가 들어선다. 이전의 폐습과는 완전히 절연해야 한다. 통합당이 계속 무기력하게 굴러가는 것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하나의 ‘운’이다. 그렇다면 지금 때가 온 셈이다. 이 시점엔 ‘채근담’의 경구가 잘 어울린다. 접인춘풍 임기추상(接人春風 臨己秋霜), 내로남불의 정치를 뿌리부터 끊어내는 담대한 칼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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