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詩] 생활 - 이은봉
[마음이 머무는 詩] 생활 - 이은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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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이은봉(1953 ~ )

우리 집 거실 귀퉁이에는 무말랭이가 마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감말랭이가 마르던 곳이다 땅콩알이

마르던 곳이다 은행알이 마르던 곳이다 구린내를 풍기며

인삼주도 더덕주도 호박덩이도 함께 마르고 있는

우리집 거실 귀퉁이

고향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농촌을 떠난 지 도대체 얼마인가

대도시 아파트에 살면서도 나와 아내는 여태껏 농촌을 떠나지 못 하고 있다 고향을 오가며 살고 있다

좁아터진 거실 이곳저곳을 오가며 오늘도 아내와 나는 습관처럼 자연에서 준비해온 먹거리들을 다듬고 있다

이것들 다 나날의 목구멍이 시킨 것이지만, 나날의 생활이 시킨 것이지만……

목구멍보다, 생활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으랴.

 

[시평]

생활(生活)이란 무엇일까. 날 생(生)자. 살아날 활(活)자. 생명으로 태어나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말의 뜻을 가지고 보면, 태어나 살아간다는 그런 의미이다. 태어난 존재가 살아간다는 것은, 어느 의미에서 가장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에 충실하며, 자신의 자연스러운 욕구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서 살았다. 그러면서 주말이면 고향을 오가며 산다. 고향에서 부모님이 농사를 지어 마련하신 무말랭이며 감말랭이며 더덕이며 호방덩이들을 가지고 와서는, 도시의 아파트 좁은 공간에 놓고 말리고 손질을 한다. 주말이면 쉬지도 않고 고향을 오가고, 무거운지도 모르고 농산물을 가지고 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먹고 자란, 그래서 이제는 자연스러운 입맛이 되어버린 먹거리들이기 때문이리라.

외국으로 이민을 가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나이가 들수록 고향의 음식이 더 절실하다고 한다. 나이가 들수록 목구멍은 고향의 먹거리를 찾는다. 비록 몸은 대도시의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고향의 먹거리를 가지고 와 정성껏 손질하며, 그렇듯 목구멍이 시키는 대로 우리는 살아간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천연한 욕구가 되어버린 어린 시절의 그 입맛. 오늘도 우리는 그 입맛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목구멍보다, 생활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으랴.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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