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면 천지일보 편집인.

오늘은 좀 색이 다른 글을 쓰고 싶다. 며칠 전은 6.25 70주년이었다. 70년 전 왜 죽어야 하는지 그 영문도 모른 채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의 흉탄에 쓰러지기 직전, 당시 애절한 심정과 다급한 상황을 담아 어머니에게 부치려 했지만,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를 70년이 지난 오늘 이 지면의 여백을 통해 대신 부치고자 한다.

 

 

 

어머니에게 쓴 부치지 못한 편지

 학도의용군 이우근

1950년 8월 10일 쾌청

어머니, 저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하나를 사이에 두고 十(십)여 명은 될 것입니다.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 드려야 제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벌컥벌컥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들이 키고 싶습니다.

어머니, 놈들이 다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그럼...이따가 또...

 

이 글은 경상북도 포항시 용흥동에 있는 전몰학도충혼탑 공원에 한 학도병의 편지비의 편지내용이다.

1950년 당시 포항지구전투에 참여했던 이우근과 그의 동료들은 대부분 전사했다. 시신을 수습하다가 그의 주머니에서 나온 ‘부치지 못한 편지’의 내용이 비문에 그대로 적혀있다. 이우근 의용군은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꿈 많던 17세의 어린 소년이었으며, 왜 전쟁을 하고 사람을 죽여야 하는지를 어머니에게 묻고 싶었고, 너무나 어머니가 보고 싶었고, 어머니와 살던 집이 사무쳤다. 그래서 꼭 살아서 어머니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동료들만 남기고 혼자 살아남아 갈 수 없어 동료들과 함께 쓰러져갔을까.

동족상잔의 비극이 있은 지 70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일곱 번의 강산이 바뀌면서 대한민국은 아니 세계는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지만, 이 한반도의 비극만큼은 그 때나 지금이나 한 치의 변화도 없이 요지부동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지난 6.25 70년 행사에 참석해서 기념사를 발표했다. 기념식에선 국군전사자 유해 147구가 70년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오는 것에 맞춰 문대통령이 “충성! 70년 만에 조국으로 복귀를 명받았습니다”라는 복귀 신고를 받는 자리도 겸하게 됐다. 참으로 숙연한 자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대통령은 기념사를 통해 “단 한 뼘의 영토, 영해, 영공도 침탈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각오를 국민들에게 비쳤다. 이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나 방송을 지켜본 국민들 대다수가 ‘감동 받았다’는 후문이다. 대한민국 국군통수권자이면서 최고 지도자며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생명을 책임진 대통령의 기념사 한 구절에 대부분의 국민들이 감동을 받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다. 지도자로서의 당연한 멘트 하나에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지금까지 대한민국은 정체성을 잃고 방황했음이 한 번에 체크되는 순간이었다.

다시 말해 선열들의 피로 지켜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궈 낸 이 엄중한 현실에 대한 개념이 남과 북의 관계 속에서 왜곡되고 모호한 부분들이 있었다면 분명 제대로 정리돼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이름 모를 산야에서 꽃 한번 피워보지 못한 영령들의 억울한 죽음에 보답하는 길이며, 17세 소년 이우근이 저 하늘에서 편히 눈을 감을 수 있게 하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자.

‘국가’에 대한 정체성만큼은 이념도 진영도 여야도 망각하고 왜곡해선 안 된다는 진리를 이참에 강조하고 싶다.

학도의용군 이우근 학생이 미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오늘 이 순간 이 지면을 통해 전후세대에게 다시 읽게 하는 것은 다툼과 분쟁과 전쟁 대신 한반도 평화 통일은 물론 세계평화의 대업에 동참하라는 시대적 명령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하는 것은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곧 세계평화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김진호 화백 ⓒ천지일보 2020.6.28
김진호 화백 ⓒ천지일보 202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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