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우리가 이 직책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않게 하고,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요란한 것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과 깨끗함과 지식과 오래 참음과 자비함과 …중략…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2~10).”

그러하다.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며 구원의 때가 맞다. 하지만 세상은 캄캄한 밤이 되어 천지를 분간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엄중한 때에 있게 되는 현상들에 대해 2천 년 전 사도인 바울이 미리 잘 말해놨다. 깨닫게 되는 것은 구원받는 때에 나타나는 일들이 마치 구원받지 못할 것 같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2천년 전 구원자가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왔지만 그들은 받아주지 않았으며,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왜 그랬을까. 구원받기 싫은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다. 그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을 몰랐고 오해했기 때문이다.

‘실로(shiloh)’ 곧 오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미리 잘 설명해줬지만, 그들은 성경대로가 아닌 자신들이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자기 신앙을 해온 결과였다. 실로의 모습이 어떠하다고 했던가.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했고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으며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고 했다. 또 멸시를 받아 사람에게 싫어 버린 바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 같고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다고 했다. 그러함에도 그때나 오늘날이나 교회 앞엔 어김없이 할리우드 극장의 대스타 모습이 걸려있다. 교회 입구부터 구원을 속이고 거짓으로 영혼을 미혹해왔다.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 있었던가. 사람을 보지도 믿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이 말씀이니, 말씀 즉, 약속만을 믿고 바라보기를 원했으며,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기 고향에서조차 배척을 받아야 했고,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정치 권력과 하나 되어 죄 없어도 죄를 뒤집어씌워 십자가에 매달았다. 빌라도는 법정에서 예수의 죄 없음을 세 번에 걸쳐 손을 씻어 증명했으나 기득권이 된 종교와 정치는 마치 모리배(謀利輩)가 되어 여론몰이를 만들어 민란을 유도했고, 결국 빌라도는 민란이 두려워 그들의 손을 들어줘야 했다.

왜 이런 말을 할까. 지금 이 세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마지막 역사가 진행되는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다. 이 엄중한 때에 맞게 되는 모든 일들이 예수 초림 때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못 박음으로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환호했으나, 사실은 죽은 후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남으로 영생과 부활의 첫 열매가 됐으니 하나님의 각본대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대승리인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오늘날도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 버린 바 되어야 할찌니라(눅 17:25)”며 예수님과 함께 마지막 하나님의 역사를 담당할 천택지인(天擇之人) 곧 한 목자를 약속해놨다면 과연 누가 믿을까. 그 역시 초림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양이며, 예수님과 같은 고난을 받게 될 것이 약속으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 또한 누가 믿을까.

“그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또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마 10:17~18).”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이 어찌 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당국의 잘못을 신천지에 뒤집어씌워 마녀사냥 하는 대한민국, 종교지도자들은 진리 앞에 자신들의 거짓이 드러날까봐 신천지 제거에 골몰해왔고, 정부는 자신들의 무능을 감출 방법을 찾던 터에 정치와 종교 나아가 기득언론까지 합세해 공동의 목적을 위한 의기투합으로 연합전선을 폈고, 2천년 전과 같이 여론몰이를 통해 온갖 죄를 다 뒤집어씌우며, 지도자들은 대권에 눈이 멀어 체포 조를 결성해 친히 체포조장이 되고, 살인죄로 고발해 평화의 일을 못하게 했다.

어찌 이뿐이겠는가. 교회는 폐쇄당하고 성도들은 디아스포라와 같은 입장이 됐고, 국정조사를 받고, 2천년 전과 같이 딱히 죄를 찾지 못해 망설이던 검찰은 민란과 같은 여론몰이에 못 이겨 신천지 총회장은 물론 간부들을 잡아들여 조사하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실적이 필요한 걸까.

어찌 명단제출에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교회 조직이 군대조직도 공무원 조직도 아니며 세상의 일반조직도 아니다. 믿음이라는 가변성을 전제로 한 신앙조직의 명단제출에 100%라는 강제성을 적용할 수 있을까.

교회 간부들은 성도 개인의 인권과 신분을 책임질 의무가 있지 않은가. 개인의 신분이 노출됨으로 몇 사람이나 천하보다 귀한 목숨을 잃었던가. 정부도 그 누구도 책임져 주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은 불화로 파탄 지경에 이르는 등 그 폐해는 환산할 수 없을 정도다. 명단 누수에 굳이 책임을 묻는다면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자유롭게 종교 활동을 할 수 없게 한 사회와 국가가 아닌가. 원인 없는 결과가 있을 수 없을 진데 어찌 결과만을 문제 삼는가.

그럼에도 지금 신천지 지도자들은 환난과 궁핍과 곤란과 매 맞음과 갇힘과 징계를 받는 자가 돼 있다. 이 억울함을 하늘은 지켜보고 있고 기억하고 있다.

이 세상 지도자들은 이 말을 꼭 들어야 한다. 2천년 전 종교지도자들과 권력이 승리한 줄 알았겠지만 진실은 하나님의 승리였던 것처럼, 지금 이 땅에서 있어지는 모든 일들 또한 하나님이 하신 일임을 증거 하기 위함이요, 죽은 것 같으나 실상은 살았고 이긴 것임을 기억해야 할 듯싶다.

괄목할만한 것은 모진 핍박과 시련 가운데서도 신천지 성도들은 먼저 가신 예수님의 인류를 위한 희생을 본받아 자신의 혈장으로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겠다고 앞장서고 있다.

지금 온 세계 평화 운동가들이 대한민국 정부와 기독교를 향해 신천지를 향한 음해와 마녀사냥을 당장 멈추라는 경고를 빗발치듯 하고 있다는 점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천지일보 202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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