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오늘 통일논단의 제목은 다소 충격적이다. 북한을 지배하는 북한 노동당 고위간부들이 꽃제비로 변하고 있다? 믿기 어려울 것 같지만 현실로 되어 가고 있다는 첩보가 속속 들어오고 있다. 먼저 북한사에서 꽃제비의 등장 과정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의 꽃제비는 고난의 행군기인 지난 1995년도에 생겨난 말이다. 그 이전까지 북한에도 거지는 있었지만 어린 아동들이 기차역이나 장마당으로 쏟아져 나와 ‘거지군단’을 이룬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지어 북한 당국은 6.25 한국전쟁이 끝나고 고아가 된 수많은 거지들이 거리를 배회하자 그들을 모두 집합해 동구라파 나라들로 보낸 적도 있다.

꽃제비의 어원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게 없다. 북한은 이들의 존재 자체를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며, 북한 사전 등에도 이 단어가 올라 있지 않다. 꽃제비라는 말은 1990년대 중반부터 주민들 간에 유행된 신조어이다. 꽃제비라는 용어의 연원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존재한다. 2001년 3월 발표된 북한의 장편소설 ‘열병광장’에 꽃제비에 대한 설명이 등장한 바 있다. 이 소설에서 넝마 같은 옷을 입고 시장바닥을 헤매는 집 없는 아이들을 꽃제비로 부르고 있는데, 소설은 이 말이 이미 광복 시기부터 쓰였고 러시아어에서 변형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에 따르면 꽃제비의 어원이 “소련사람들이 유랑자, 혹은 유랑자들이 거처하는 곳을 가리켜 말하는 ‘코체브니크(КОЧЕВНИК)’ ‘코제보이(КОЧЕВОЙ)’ ‘코제비예(КОЧЕВЬЕ)’라는 말을 아이들이 제멋대로 해석하고 옮긴 것”이라고 그 어원을 밝히고 있다.

이 외에도 중국조선족에 따르면 꽃제비의 제비는 ‘잡이·잽이’로서 낚아챈다는 의미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중국말로 거지를 의미하는 ‘화자(花子)’에서 ‘꽃’이라는 말이 유래한다는 설도 있다. 식량난과 경제난이 심화되던 1990년대 중반부터 꽃제비가 급증했다. 탈북자 증언집 ‘최근북한실상’ 1999년 7월호에 따르면 꽃제비가 다양화되고 있어 주민들에 의해 ‘덮치기 꽃제비’ ‘쓰레기 꽃제비’ ‘완구당 꽃제비’ ‘매춘꽃제비’ 등으로 유형화돼 불리고 있다고 한다.

2009년 화폐개혁 이후 꽃제비들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화폐 교환 조치 이후에 식량 사정으로 먹고 살기 힘든 가정이 늘면서, 며칠씩 굶다가 전 재산을 모두 헐값에 팔아 쌀을 사먹고는 더 이상 팔 게 없어 집마저 팔고 꽃제비가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전에는 주로 아이 꽃제비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어른 꽃제비들이 눈에 띄게 많아지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의 경우, 150일 전투기간에 꽃제비들을 이중, 삼중으로 단속할 것을 각 관련기관에 지시했다. 이에 따라 보안서를 비롯한 철도역 검열대와 청년동맹 비사검열조(비사회주의 검열조), 시장 질서유지대 등은 꽃제비들을 단속해 구제소나 본 거주지로 보내고 있다. 2012년 김정은의 공식 집권 이후 북한에서 가장 단속이 심한 곳이 탈북민과 장마당에서의 꽃제비 척결로 나타났다. 북한을 버리는 탈북민 대열이 줄어들지 않는 한 이른바 사회주의 찬양도, 또 장마당을 배회하며 땅바닥에 떨어진 국수오라기 등을 주어먹는 가련한 어린이들의 모습을 김정은도 차마 그대로 볼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왜 오늘날 북한의 고위간부들이 꽃제비로 되고 있단 말인가? 대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김정은은 지난해 가을 북한 정권의 ‘다운사이징’을 공식 선포했다. 평양에 집결해 있는 노동당과 내각의 고위한부 3명 중 1명은 모두 지방으로 내려가 장마당에서 먹고 살라고 일갈했다. 더 이상 그들을 놀고 먹일 자산이 바닥을 드러낸 마당에 마냥 평양에서 노닥거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당장 그들이 갈 곳이 그리 많지 않다. 평양을 떠나야 하는 고위간부도 꽃제비 신세지만 평양에 남아 자리를 지키는 고위간부도 꽃제비 신세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더 이상 식량공급과 부식물 공급이 잘 안 돼 내각 외무성 부상(차관급)이 명태 열 마리를 배급받기 위해 줄을 서며 “야 이제 우리가 꽃제비 아니가?”라는 자조 섞인 말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향후 김정은은 ‘최고존엄’에서 ‘꽃제비 수령’으로 불리지 않을까 걱정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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