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북한의 최고인민회의는 연 2회 열리는 ‘국회’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이 지난 4월 10일 개최하기로 공표한 제14기 3차 최고인민회의를 북한 매체가 전혀 보도하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최고인민회의를 예정대로 개최하지 않았을 가능성과 개최했음에도 내용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을 가능성 등 여러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비공개란 쪽에 무게를 두기에는 최고인민회의 비중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최고인민회의 자체가 노동당이 이미 결정한 내용들을 공개 결정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1일 정부 관계자는 “아직 상황을 보고 있다”면서 현재 상황에서 개최 여부를 판단하긴 이르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3월 21일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민주조선을 비롯한 북한 공식매체들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3차 회의를 4월 10일 평양에서 소집한다”고 전국 687명의 대의원들에게 알린 바 있다. 때문에 북한 매체는 통상 하루 시차를 두고 내부 소식을 전해 이번 최고인민회의 관련 보도는 11일 오전 또는 이르면 10일 밤에는 나올 것으로 예상돼 왔다. 통일부 부대변인도 전날인 10일 ‘통상적인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보도시점’을 묻는 취지의 질문에 “지난해 두 차례 최고인민회의가 있었고, 익일 아침 6시 넘는 시간에 보도가 됐고, 또 다른 한 번은 당일 날 오후 8시 전후해 보도된 적이 있다”고 답한 바 있다. 이런 관례를 깨고 11일 오후 5시 기준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 조선중앙방송, 조선중앙TV 등 북한 매체를 통한 관련 보도는 전무하다.

이에 대해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예정됐던 최고인민회의가 미뤄진 것이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실제로 그런 이유 빼고 북한의 국회가 함구할 이유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여전히 확진자가 0명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보 공개 등이 투명하게 이뤄지지 않는 북한의 특성상 북한이 공개하지 않을 뿐 확진자가 있다는 의혹은 지속적으로 제기된 바 있다. 이런 정황을 고려하면 최고인민회의가 간소하게 열릴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앞서 정부도 최고인민회의의 간소화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지난 7일 기자들과 만나 코로나19 여파로 예년보다 축소된 형태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통상적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록은 1∼2일 전에 이뤄졌는데, 이번에는 회의 당일 등록하는 것으로 돼 있어 일정이 다소 간소화된 편”이라며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반영된 것 아닌가 추정한다”고 말했다.

또 “최고인민회의 참석 대의원들은 통상적으로 금수산기념궁전을 참배하거나 조선혁명박물관을 참관했다”면서 올해 관련 행사가 취소될 가능성도 덧붙여서 설명했다. 지금까지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를 연기했던 사례는 지난 2005년 한 번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은 지난 2005년 3월 9일 개최하기로 했던 ‘제11기 3차 최고인민회의’를 개최하기 5일 전에 돌연 연기한 바 있다. 당시 북한 매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대의원들의 제의에 따라 3월 9일 소집하게 될 최고인민회의 제11기 3차 회의를 연기한다”고 발표했지만 구체적인 날짜나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이번 최고인민회의도 돌연 연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추정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정기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는 북한 헌법상 최고 주권기관으로, 헌법 수정·국가의 대내외 정책에 대한 기본원칙 수립, 국가 예산을 심의·의결, 국가직 인사와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을 갖는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해마다 1회 이상 열렸으며 2016년을 제외하고 해마다 4월 최고인민회의는 개최됐다. 2016년에는 5월 당대회가 계획돼 있어 4월의 최고인민회의가 순연된 것으로 짐작된다.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687명 중 고위간부들은 대부분 평양에 있지만 지방에 거주하는 대의원들도 적지 않다. 그들을 모두 평양으로 불러 모으는 일은 일대 모험일 것이다. 우리는 이번 최고인민회의 소집 불투명 사태를 보면 북한의 코로나19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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