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제3지대 정치는 살아있다
[정치평론] 제3지대 정치는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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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최근 유럽정치의 흐름을 보면 기존 정당체제 곳곳에 크고 작은 균열이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스펙트럼에 기반하고 있는 전통적 기득권 정당체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 자리에 새로운 ‘빅 이슈’를 선점한 신생정당이 선거 때마다 선전을 하면서 유럽의 정치지형을 바꾸고 있는 모양새다. 스페인을 비롯해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스, 오스트리아 그리고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영국과 독일까지 그동안 굳건했던 기존의 기득권 정당체제가 위기를 맞고 있다. 물론 신생정당이 이미 집권했거나 집권하고 있는 나라도 있다.

이렇듯 2차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를 거치면서 좌파와 우파를 양대 산맥으로 정치적 기득권을 형성했던 ‘이념정당’은 이제 서서히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더 이상 기존의 이념으로는 담을 수 없는 새로운 이슈들이 광범위하게 여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연쇄적인 금융위기와 구조적 실업문제, 난민문제, 기후환경문제 등은 기존의 이념적 잣대로는 뚜렷한 해법을 찾기 어렵다. ‘맞춤형 신생정당’이 급부상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게다가 오랫동안 기득권을 누려온 기성 정당에 대한 국민적 불신과 냉소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특정 정당에 대한 불신을 넘어 정치에 대한 불신, 심지어 민주주의 자체에 대한 회의론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고 하겠다.

민주화 수준이 비교적 높은 한국의 경우도 유럽과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다. 비록 민주주의 역사는 유럽에 비해 많이 짧지만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적으로 그리고 압축적으로 진행되면서 해방 이후 한국이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는 결코 간단치가 않다. 그 결과 우리는 벌써 ‘민주화 이후’를 고민하는 단계에 와 있다. 신자유주의가 몰고 온 민주주의에 대한 왜곡, 지식정보화가 바꿔놓고 있는 정치시스템의 작동방식 그리고 이념적 갈등구조의 붕괴와 정치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는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유럽정치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유럽정치의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해방 이후부터 재구축된 정치 기득권 세력의 성벽이 너무도 높고 단단하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를 비롯한 제도적 장치는 철저하게 기득권세력 편이다. 권력기구를 비롯해 경제, 언론, 지식 등도 그 주변으로 재정렬 돼 있다. 따라서 ‘기호1번’과 ‘기호2번’이 독점하고 있는 정치 기득권구조를 깬다는 것은 말 그대로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정치 기득권을 장악한 그 두 그룹의 관계를 ‘적대적 공생관계’라고 부른다. 해방 이후부터 한국정치는 ‘그들의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2016년 20대 총선에서 신생 국민의당이 돌풍을 일으킨 것은 거의 ‘혁명적’인 사건이라 하겠다. 그 이전의 ‘제3당’과는 달리 정치 기득권세력에 대한 ‘교체’를 외쳤으며 그 중심에 있는 특정 계파주의에 대한 도전장을 던진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념과 지역을 장악한 정치 기득권세력에 맞서 ‘국민 중심’의 ‘새로운 정치’를 기획하는 것이 ‘제3지대 정치’의 요체다. 국민의당은 창당 두달 만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원내교섭단체가 되고 정당득표율 2위를 기록한 엄청난 성과를 거뒀다. ‘제3지대 정치’에 국민이 직접 화답한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한국정치의 거대한 변동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거기까지였다.

국민의당 정통성을 계승한 바른미래당의 최근 상황을 보노라면 초라함을 넘어 오히려 참담하다. ‘제3지대 정치’를 향한 당당함과 결연함은 어딜 갔는지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는 정상배들의 음모와 분탕질로 콩가루가 된 지 이미 오래다. 온갖 수모와 조롱의 한 복판에 있는 손학규 대표가 그 와중에서도 꿋꿋하게 당을 지키고 있는 것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참으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제3지대 정치’의 비극이다.

그러나 물이 들어오고 있다. ‘제3지대 정치’의 가능성과 희망의 서곡이 시작되고 있다는 뜻이다. 바른미래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최근의 ‘조국 사태’는 지역과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정치의 후진적 대결구조를 다시 한 번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촛불로 나뉜 적개심은 기호1번과 기호2번에 올라탄 정치꾼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겠지만 갈기갈기 찢겨진 국론은 우리 시대의 참담한 현실 그 자체다.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그 주범이다. 기본도 상식도 예의도 없다. 저주의 막말과 길거리 세력 간 대결이 모든 것을 압도했다. 이런 정치판이 앞으로도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말인가.

민주당에 실망하고 자유한국당에 절망한 국민이 적지 않다. 끊임없는 싸움질과 편가르기에 신물이 난 사람들은 더 많을 것이다. 이참에 ‘정치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요구도 터져 나올 것이다. ‘제3지대 정치’의 공간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제3지대 정치’를 표방한 사람들이 화답해야 한다. 그들이 만들지 못한 정치 공간을 국민이 다시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마침 21대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일찌감치 ‘제3지대 정치’를 선점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어쩌면 한국정치의 미래를 가늠할 명운이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의 기강을 다잡고 전선을 명확히 해야 한다. ‘물러날 자’와 ‘앞세울 자’를 분명히 한 뒤 강호의 인재들을 규합해야 한다. 동시에 대한민국이 가야할 ‘제3지대 정치’의 비전을 명확히 제시해야 한다. “이건 나라냐”고 다시 묻는 국민에게 답해야 할 순서는 이제 ‘제3지대 사람들’의 몫이다. 노를 힘차게 저을 수 있는 큰물이 들어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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