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미국 대선 바이든 지고 워런 떠오르다
[정치평론] 미국 대선 바이든 지고 워런 떠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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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미국 대선을 일 년여 앞둔 시점에서 민주당 소속 엘리자베스 워런(Elizabeth Warren) 상원의원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올해 70세로 나이가 조금 많긴 하지만 ‘흙수저’ 출신의 여성 정치인으로서 비교적 선명한 정치노선과 시선을 사로잡는 정치적 카리스마는 미국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인다. 게다가 파산법 전공의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출신으로서 인생 스토리도 국민적 관심을 모을 만큼 흥미롭다. 미국정치에서 ‘진보적 아젠다’를 주도하고 있는 그의 삶과 신념의 배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워런이 최근 민주당 예비경선 후보 가운데 전국 여론조사에서 처음으로 조 바이든(Joe Biden) 전 부통령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줄곧 1위를 차지했던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휩싸이면서 주춤 하는 바람에 워런이 그 자리를 치고 올라간 셈이다. 물론 조 바이든과의 격차가 오차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얼마든지 재역전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워런이 민주당 예비경선의 ‘빅3’ 가운데 한 명인 그 유명한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를 따돌리고 그 지지자들까지 일부 흡수하면서 내친김에 조 바이든까지 2위로 밀어내는 ‘저력’을 보였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 저력이 무엇인지를 잘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민주당 지지층의 민심을 통해 미국정치의 변화상을 읽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샌더스는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심장질환으로 인해 선거운동까지 잠시 미룰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78세의 비교적 고령인 점을 감안한다면 한 때 미국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던 ‘샌더스의 길’이 더 탄력을 받기엔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면 샌더스에 박수를 보냈던 그 젊은이들이 워런 지지로 돌아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미래를 설계하는 두 사람의 정치노선이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워런은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 시절 월가의 탐욕스런 금융사업가들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제시하며 금융소비자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했던 투쟁 경력이 있다. 그리고 단지 운동가로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오바마 행정부시절에는 ‘금융소비자보호국(CFPB)’ 신설을 이끌어 낸 장본인이기도 하다. 파산법 전공에다가 CFPB 신설을 주도한 워런이 그 초대 국장에 적임자였지만 당시 월가의 금융업자들과 공화당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대신 초대 국장이 된 코드레이(Richard Cordray)를 추천하는 데 만족해야만 했다.

그러나 당시 미국경제는 물론 세계경제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던 2008년 경제위기의 주범인 월가의 금융업자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운 투쟁적인 면모는 오늘의 워런을 더 빛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2014년 펴낸 그의 자서전 제목도 ‘A Fighting Chance(싸울 기회)’였다. 샌더스의 정책노선이 ‘사회주의적인 요소’에 더 가깝다면 워런은 ‘진보적 민주주의’ 노선에 더 가깝다. 한마디로 샌더스보다 더 리얼하다. 이를테면 중산층 복원과 양극화 해소, 교육과 보건의 사회적 책임 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강하다. 워런의 정치적 슬로건처럼 언급되고 있는 ‘책임지는 자본주의(Accountable Capitalism)’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억만장자들과 초고소득자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물리게 하는 것은 너무도 정당하다는 것이 워런의 생각이다. 그 연장에서 워런은 ‘수퍼리치세(Ultra-Millionaire Tax)’ 도입을 자신의 핵심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양극화 수준은 상상을 초월한다. 물론 자본주의 역사가 매우 긴 편이지만 그 사이 ‘미국 민주주의’ 틀 뒤에 숨어서 온갖 특혜를 누리며 반칙과 범죄로 탐욕스럽게 부를 축적한 거대 자본가들의 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다. 한 자료에 의하면 미국의 최고 부자 400명이 전체 흑인 가구와 히스패닉 가구 4분의 1을 합친 만큼의 부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상위 13만 가구의 재산은 하위 1억 1700만 가구의 재산과 같다. 반면에 미국의 조세제도는 재산보다 ‘수입’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최상위 0.1%의 조세부담률은 3.2%에 불과하다. 반면에 하위 99%의 조세부담률은 7.2%에 달해 조세제도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이 워런의 지적이다. 수퍼리치세 도입의 배경이라 하겠다.

미국 민주주의에 절망하고 미국이 쌓아올린 자본주의 성벽에 분노하는 민주당 성향의 합리적 유권자들이 워런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는 이처럼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도덕성’을 최강의 무기로 삼았던 조 바이든이 바로 그 도덕성 때문에 큰 상처를 입고 있다. 그렇다면 워런의 강점이 더 부각되고 대중적 지명도까지 높아질 경우 트럼프 대통령까지 위협할 수 있는 ‘민주당의 대안’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까지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으니 미국 대선 전망은 아직도 불투명하다.

워런이 내놓은 수퍼리치세 구상이 공론화 돼 향후 10년 동안 3조 달러 가량의 추가세원이 마련돼 이 돈으로 미국의 보편적 복지를 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국민적 공감을 얻게 된다면 워런의 입지는 더 단단해질 것이다. ‘워런 패러독스(Warren Paradox)’로 불리는 저학력 노동자층과 백인 노동자들도 전혀 다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이야 말로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배신에 가까운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워런이 부쩍 노동자들과의 소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엘리트 지식인 이미지 대신 흙수저 출신으로서 미국의 중산층 복원에 전력투구하겠다며 신발 끈을 조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미지와는 딴판이다. 과연 ‘워런의 가치’가 더 탄력을 받게 될지 그의 행보가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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