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21대 총선이 4개월 보름정도 남았다. 물론 한국정치의 시계로 본다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총선까지 판세를 크게 흔들 수 있는 태풍이 계속 밀려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은 누구도, 어느 정당도 비관하거나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비교적 단단한 우세를 보이고 있는 민주당일지라도 자칫 역풍에 휘말리면 분노한 민심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여전히 상황파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는 한국당이 빨리 정신이라도 차리게 된다면 총선 정국의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물론 ‘제3지대 정치세력’의 깃발을 든 바른미래당도 아직은 비관하기 이르다. 여야 모두가 마치 살얼음판을 걷듯 긴장하는 이유라 하겠다.

그러나 민주당과 한국당의 패권싸움 구도로 21대 총선을 전망하는 것은 이제 식상할뿐더러 무익해 보인다. 어느 쪽이 이기든 그것이 국민의 일상에, 또는 한국정치 발전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두 정당의 입장을 넘어 ‘국민의 눈’으로 21대 총선을 볼 때 민주당이 의석을 조금 더 얻는다 한들, 반대로 한국당이 선전한들 국민의 삶에는 무슨 변화가 있을까. 국민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정치 발전에는 또 어떤 의미가 있을까. 반복되는 두 거대정당의 무한정쟁과 힘겨루기 그리고 이에 편승한 두 진영의 길거리 패싸움으로 한국사회가 더 깊은 골병이 들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결코 비관적인 시선이 아니다. 21대 총선이 끝나면 바로 대선정국으로 갈 것이다. 마침 문재인 정부 임기 후반기와 맞물려 있다. 아마 차기 대통령 권력을 놓고 또 죽기 살기로 싸운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게 상식이다. 그래서 21대 총선의 의미를 조금 더 깊게 보자는 얘기다. 두 거대 기득권 정당의 진영간 패싸움을 끝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21대 총선에서 열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당과 한국당의 독점적 기득권이 대폭 해소되고 그 자리에 제3, 제4의 교섭단체가 30~50석 안팎으로 진입하는 경우다. 그렇게 되면 당장 국회가 변할 것이고 정당의 위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죽기 살기로 싸우는 패싸움의 의미도 없어진다. 국민을 향한 정책경쟁이 살아나고 ‘대화와 협상’의 가치가 존중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정치의 복원’이다. 그렇다면 21대 국회는 ‘물갈이’ 만으로는 부족하다. 두 거대 정당이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 정치의 판을 바꾸는 ‘판갈이’가 돼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그 가능성은 살아있다. 먼저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돼야 한다. 이것은 정치 기득권의 벽을 깨는 첫 신호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제3지대 정치’와 ‘진보정치’의 영역이 더 확대되고 강화돼야 한다. 현실적으로 정치 기득권을 깰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망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68혁명’은 유럽정치의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모멘텀이 됐다. 동시에 유럽정치에서 신좌파 흐름을 주도하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오늘날 유럽의 풍요와 정치발전은 그들의 공이 크다. 이런 점에서 ‘68세대’는 역사발전과 시대정신을 이끌었다는 자랑스런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통은 너무도 짧게 끝나고 말았다. 구체제와 맞서 싸우면서 어느새 그들도 적들과 동질화 돼 버린 것이다. 관료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심지어 금세 기득권화 돼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외쳤던 ‘도덕성’은 오히려 그들의 족쇄가 되곤 했다. ‘정치적 상상력’은커녕 구체제의 낡은 문법이 반복되기 일쑤였다. 참으로 기이한 ‘정치변동의 역설’이 되고 말았다. 오늘날 유럽정치의 지각변동은 그 연장선에 있다. 정치 기득권세력에 편입된 그들에 대한 ‘시대적 분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부터 20여년 뒤 한국의 ‘민주화 세대’도 비슷한 길을 밟았다. 군사독재 시대를 끝내고 민주화 시대를 이끈 견인차 역할을 했다. 한국 현대정치사의 시대정신을 실천한 자랑스런 전통이요,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의 풍요를 일궈낸 주역이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민주화 이후(포스트 민주주의)’ 그들의 다수는 프랑스 86세대가 그랬듯이 ‘기득권세력’이 돼버렸다. 권위주의에 물들고 패권주의에 빠졌으며 심지어 오만하고 무능한 관료주의 악습을 답습했다. 물론 도덕성도 깨진지 오래다. ‘87년 체제’의 한계에 발목이 잡혀버린 ‘한국정치의 비극’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사회가 이미 ‘민주화 이후(포스트 민주주의)’를 질주하고 있지만 정치는 여전히 87년 체제에 갇혀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헌법을 비롯해 국정운영 방식이나 정당체제 심지어 선거제도까지 87년 체제의 성벽은 높고도 험하다. 그 철옹성에 작은 구멍 하나라도 내려는 시도는 계속됐지만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그 사이 정치는 ‘무한 정쟁’이 일상이 됐으며 여론은 갈기갈기 찢겨지고 온 나라가 가는 곳마다 패싸움이다. 이성이 죽고 상식이 무너지니 ‘좀비’와 ‘괴물들’이 판을 치는, 말 그대로의 ‘막장의 시대’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21대 총선을 맞고 있다. 어느 땐들 총선이 덜 중요한 때가 있겠는가만 21대 총선의 의미는 실로 중대하다. 당장 문재인 정부의 운명과 직결될 것이요, 양당 독점체제의 존망과도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죽어야 할 것들이 죽어 없어진다면 정치변혁의 장이 펼쳐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87년 체제가 사실상 끝나면서 한국정치의 거대한 전환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민주당-한국당의 양당독점체제를 놓고 표를 계산하는 방식도 끝내야 한다. 최근 공천을 앞두고 거론되는 ‘물갈이론’은 기득권 정치의 아류에 다름 아니다. 정치기득권의 구각을 깨고 한국정치의 일보 전진을 기획한다면 21대 총선이야 말로 정치판을 통째로 전복시키는 ‘판갈이’의 원년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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