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오스트리아 총선 녹색에 물들다
[정치평론] 오스트리아 총선 녹색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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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지난달 29일 치러진 오스트리아 총선 결과를 보면 단연 눈에 띄는 것이 녹색당(Grüne)의 무서운 돌풍이다. 그리고 제바스티안 쿠르츠(Sebastian Kurz)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보수 성향의 집권 국민당(ÖVP)도 이전보다 득표율을 더 끌어 올리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반면에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했던 극우 성향의 자유당(FPÖ)은 득표율이 이전보다 거의 10% 포인트 빠지면서 가장 큰 패배를 맛보게 됐다. 의석수가 무려 20석이나 줄었다.

이번 총선에서 자유당은 사실 패배를 자초한 셈이다. 국민당과 연정을 구성한 집권세력이었지만 부총리를 맡은 슈트라헤(Heinz-Christian Strache) 대표의 ‘부패 스캔들’은 오스트리아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국책사업을 미끼로 러시아 재벌가와 손잡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으려 했다는 동영상까지 공개됐다. 결국 슈트라헤 대표가 사퇴하는 등 사태가 더 심각해지자 쿠르츠 총리가 즉시 ‘연정 파기’와 함께 집권 2년 반 만에 조기 총선을 선언하게 된 것이다.

이번 총선을 통해 다시 총리를 맡게 될 쿠르츠 전 총리는 유럽정가에서 이미 유명 인사가 된 지 오래다. 1986년생이니까 올해 33세에 불과하다. 2017년 총선 승리를 이끈 뒤 당시 총리직에 오를 때는 31세로 오스트리아 역사상 가장 젊은 총리라는 기록도 세웠다. 그리고 전 세계 주요국 정상들 가운데서도 가장 젊은 총리이기도 했다. 비록 젊은 총리였지만 정치경험까지 일천한 것은 아니었다.

쿠르츠는 이미 20대 초부터 국민당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정치경험을 쌓았으며 지방의원에 당선돼 정치 일선에 나서기도 했다. 그 후 27세이던 2013년부터는 오스트리아 외교장관을 맡으면서 자신의 이름을 국내는 물론 유럽정가에도 알릴 수 있었다. 그 직후 당에 복귀해 당 대표를 맡아 총선 승리까지 이끌어 내면서 최연소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자유당 슈트라헤 대표의 부패 스캔들이 터지자 주저 없이 연정 파기를 선언하고 조기 총선을 선언할 수 있었던 ‘정치력’은 그저 나온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번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국민당과 쿠르츠의 활약상보다 더 극적인 것은 ‘녹색당 돌풍’이다. 오스트리아는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지만 사실상 의원내각제 방식으로 국정운영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분권형 대통령제’ 국가로 분류된다. 따라서 다당제가 구조화 돼있지만 정당 난립을 막기 위해 비례대표 득표율 4% 봉쇄조항도 마련돼 있다. 지난 총선에서 녹색당은 3.8%의 득표율을 올렸지만 바로 이 봉쇄조항에 걸려 단 한 석도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난민문제’가 유럽정치를 흔들더니 최근에는 ‘환경문제’가 유럽정치의 주요 이슈로 다시 부각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세계 곳곳에서 불거지는 글로벌 환경 재앙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함께 이에 대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배신’이 큰 몫을 하고 있다. 그러나 더 극적인 것은 총선 직전에 불거진 이른바 ‘그레타 효과’가 오스트리아 총선정국을 강타했다는 점이다.

올해 16살에 불과한 스웨덴의 청소년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유엔총회 일정 중 하나로 진행된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연설한 것이 지난 9월 23일이다. 오스트리아 총선일로부터 불과 엿새 전이었다. 이 자리에서 툰베리는 전 세계 정상들을 향해 “여러분들이 무책임한 말로 나의 꿈과 어린 시절을 빼앗아 갔다”며 “지금 지구의 생태계 전체가 무너지고 있으며 대규모 멸종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는 분노에 찬 연설로 세계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툰베리의 유엔 연설은 곧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기후변화 대책을 촉구하는 집회와 시위로 이어졌으며 오스트리아에서도 총선 이틀 전인 9월 27일 6만 5000여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환경문제가 오스트리아 총선정국의 핵심 이슈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그 결과 녹색당은 12.4%의 지지를 얻어 1986년 창당 이래 최고의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불과 2년 반 전에는 봉쇄조항인 4%의 문턱도 넘지 못했던 녹색당이 이번 총선을 녹색으로 물들인 주인공이 된 셈이다.

난민 문제를 업고 극우 노선을 지향했던 자유당은 핵심 이슈가 이동하자 맥을 추지 못했다. 게다가 부패 스캔들의 당사자이기에 민심을 회복할 여력도 부족했다. 사실상 선거패배는 예정돼 있었던 셈이다. 정세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했던 사민당(SPÖ)의 패배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야당을 대표하는 정당이었지만 대안 정당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2차대전 이후 가장 큰 패배였다. 유럽정치에서 사민당 등의 기득권 정당이 왜 후퇴하고 있는지 그들은 여전히 둔감했던 것이다. ‘연정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식의 ‘반사효과’ 만으로는 여론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쿠르츠 전 총리가 조만간 연립정부 구성을 마무리 지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연정 파트너였던 자유당과 다시 손을 잡을지, 아니면 야당을 대표하는 사민당과 새로운 연정을 꾸릴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급부상한 녹색당과 손을 잡고 새로운 연정을 구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녹색당은 의석 한 석도 없던 정당에서 불과 2년 반 만에 집권세력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정치지형의 대변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연정 구성의 권한을 쥔 쿠르츠의 선택이 무엇일지 그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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