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패스트트랙의 함정
[정치평론] 패스트트랙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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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국회 신속처리(패스트트랙) 안건에 대한 최종 결론이 이제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아주 낯설고 비교적 지루한 입법과정이긴 하지만 여야가 합의해서 만들어 낸 제도이기에 그 첫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패스트트랙은 여야가 합의하기 어려운 쟁점 현안을 합법적 방법으로 처리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래서 만일의 폭력사태 등에 대한 예방적 조항까지 엄격하게 규정해 놓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공수처 법안부터 먼저 처리하자며 29일을 언급했던 것은 민주당 원내전략 부재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줬다. 패스트트랙에 따른 시점도 논란이지만 당초 선거법부터 처리하겠다던 야3당(자유한국당 제외)과의 합의를 번복한 이인영 원내대표 주장에 바른미래당과 정의당이 동의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혼자서 하겠다는 것인가. 몰랐다면 답답한 일이고 알고도 그랬다면 나쁜 일이다. 집권당인 민주당 원내대표에 대한 신뢰에 의문이 가는 대목이기 때문이다.

결국 문희상 국회의장이 나섰다. 문 의장은 29일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사법개혁법안의 본회의 부의 시점을 12월 3일로 못 박았다. 시한을 최대한 앞당기려는 민주당 주장과 최대한 늘리려는 자유한국당 주장에 쐐기를 박은 셈이다. 여야 양쪽의 의견을 수렴해서 그 중간에 있는 12월 3일을 통보함에 따라 ‘연동형 비례제’를 골자로 하는 선거법 통과여부도 그 전에 판가름 나게 됐다.

이제 관건은 패스트트랙 성패의 열쇠를 쥔 민주당의 원내전략이다. 앞서 이인영 원내대표의 ‘10월 29일 부의’ 발언으로 이미 신뢰에 금이 간 상황에서 과연 선거법을 비롯해 공수처 등 사법개혁법안을 제대로 처리될 수 있을지 감조차 잡기 어려워졌다. 정략적으로 꼼수가 나오고 민주당과 야3당간의 불신이 폭발해서 자칫 아무것도 얻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야3당과의 합의를 쉽게 던져버렸던 이인영 원내대표의 행보가 더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제 이인영 원내대표에게는 두 가지의 가능성이 열려있다. 첫째는 선거법을 통과시킨 뒤 사법개혁법안까지 모두 통과시키는 방안이다. 민주당과 야3당이 당초 약속했던 그대로이다. 두 번째는 선거법을 무산시킨 뒤 사법개혁법안까지 무산시키는 방안이다. 선거법이 무산될 경우 바른미래당과 정의당 등이 사법개혁법안에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핵심 지지층으로부터도 돌을 맞을 수 있는 ‘투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말 할 것이다. 민주당과 야3당이 합의한 대로 선거법부터 통과시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어차피 자유한국당은 반대할 테니 그들을 빼고도 민주당과 야3당이 합의하면 얼마든지 통과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하는 것이 패스트트랙 취지에 맞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수가 있다. 연동형 비례제를 핵심으로 하는 선거법을 무슨 수로 통과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현재 패스트트랙을 탄 선거제는 의석 300석을 기준으로 지역구 의석을 28석 줄이고 그만큼 비례대표의석을 늘리는 방안이다. 상식적으로 본다면 비교적 합리적 방안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역구 의석을 줄이는 데 있다. 민주당 소속이든 야3당 소속이든 자신의 지역구가 줄어드는 선거법 개정안에 쉽게 동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해당 지역구 유권자들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설사 당론을 어기더라도 지역구 유권자들과 함께 지역구를 지켜내는 쪽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표결은 무기명이니 이를 사전에 차단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설사 당론으로 정한다고 한들 결국은 당론대로 안 될 것이라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패스트트랙의 함정’이다. 이대로 가면 선거법은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자칫 민주당과 야3당이 ‘패스트트랙의 함정’에 빠져 선거법 등 ‘패스트트랙 3법’이 모두 무산되면서 서로 ‘네 탓 공방’이 가열돼 정치권의 총체적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이 유리할까. 이 모든 것이 야당 탓이라고 말하면 통할까. 민주당이 이런 저급한 꼼수를 펼칠 것으로 보진 않지만 혹여 이인영 원내대표가 이 문제까지 고민하고 있을지 참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다행스런 것은 민주당이 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단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야3당의 요구를 수용해서 국회의원 정수를 10% 확대해서 330석으로 하면 된다. 관건은 국민 여론이다. 지금의 국민 여론은 국회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의견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국회는 국민적 불신의 대상이 된지 이미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데 어느 국민이 동의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정의 바람직한 방향까지 여론에 떠밀리는 것은 집권당 태도가 아니다. 당당하게 주장하고 설득하면서 가야할 길은 가야 한다.

따라서 의석수를 30석 늘이는 대신 그만큼의 국민적 부담을 줄이는 방안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과도한 특권을 줄이고 세비도 줄이면서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이미 야3당이 의석수 확대에 나선만큼 민주당의 정치적 부담도 줄었다. 민주당이 결심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야 선거법이 어렵지 않게 통과되면서 사법개혁법안도 함께 처리될 수 있다. ‘꼼수’나 ‘부결’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면 민주당은 하루빨리 야3당과 머리를 맞대고 좀 더 구체적인 패스트트랙 대응책을 준비해야 한다. 어렵게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3법이 기나긴 시련 끝에 결국 쓰레기통으로 가는 일만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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