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아베는 좋겠다
[정치평론] 아베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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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 20일자로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가 됐다. 가쓰라 다로(桂太郞)의 2886일 기록을 뛰어넘으며 지금 이 시간에도 끝 모를 그의 시대를 이어가고 있다. 가쓰라가 누군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제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조선왕조의 멱살을 잡았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가쓰라는 그 후 총리가 돼 최장수 총리 기록을 갖고 있었다. 그 기록이 이번에 깨진 것이다. 조선왕조는 망국의 피눈물을 하소연하며 소맷자락 부여잡고 미국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미국은 그런 조선의 등 뒤에서 칼을 꽂았다. 바로 그 주인공이 태프트(William H. Taft)였다. 이후 그도 미국 27대 대통령이 됐다. 가쓰라와 태프트, 미국과 일제가 손을 잡고 조선을 능욕하고 있을 때도 조선왕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물론 우리가 바보였다. 그리고 나라를 지켜낼 만한 힘도 없었다. 아무튼 우리네 가슴에 맺힌 망국과 배신의 통한이야 어찌 말과 글로써 다 담아낼 수 있겠는가.

불행하게도 ‘아베의 시대’는 계속되고 있다. 아베는 지난해 8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3연임에 성공해 2021년 9월 말까지 임기를 확보해 놓은 상태다. 이대로 간다면 내년 8월에는 그의 외조부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의 연속 최장 재임 기록(2798일)도 뛰어넘게 된다. 이래저래 아베는 일본 헌정사의 새로운 이정표를 쓰고 있다. 단순히 기록만이 아니다. 아베의 독주를 막을 대안이 보이질 않는다. 게다가 지지율도 비교적 탄탄하다. 미일관계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어 보인가. 그래선지 중의원 조기선거 얘기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아베가 마음만 먹으면 ‘3연임 당칙’도 뛰어 넘을 수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아베의 꿈은 분명하다.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해서 ‘전쟁 할 수 있는 나라’로 바꾸는 것이다. 자위대 위상을 ‘제국의 군대’로 자리매김하고 2차 대전 패전 이후 ‘제국의 후예들’이 하루도 잊지 않은 그 ‘욱일기’의 깃발을 명실상부하게 복권시키겠다는 뜻이다. 마침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아베 정권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중국의 급부상에 놀란 미국도 이참에 일본을 앞세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기득권을 지켜내겠다는 계산이다. 마치 1905년 가쓰라와 태프트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러나 ‘아베의 꿈’이 순탄하게 이뤄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비록 지지층이 탄탄하다고는 하지만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아베 대항마가 없다 해도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서도 욕을 먹고 있다. 재선 여부는 두고 봐야 한다. 동맹국 보기를 ‘돈’처럼 보는 사람들이다. 믿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 게다가 지난 ‘7.21 참의원 선거’ 결과도 자민당-공명당 연립여당이 선전은 했다지만 개헌의석을 넘지는 못했다. 그렇다면 평화헌법까지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봐야 한다.

아베 입장에서는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가장 전통적인 방법이 북한이나 한국을 때리는 일이다. 하지만 북한은 미국과 샅바싸움을 하는 중이라 쉬 손대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이번에도 ‘만만하다’고 생각한 한국을 때리기로 결심했다. 느닷없이 한국정부를 군사적으로 믿을 수 없다며 반도체 핵심부품 등의 수출을 통제하는 ‘경제전쟁’을 선포한 것이 그것이다. 물론 논리도 근거도 상식도 없다. 미국을 업고 한국정부를 벼랑 끝으로 내몰면서 ‘아베의 독주’를 더 가속화 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한국정부의 반격이 생각보다 강할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들까지 반일(反日) 성향을 노골적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의 주요 대기업들이 일본산 부품이나 소재에 연연하지 않을뿐더러 독자적인 기술개발에 나섬으로써 오히려 일본을 뛰어 넘고 있다는 소식까지 전해지고 있다. 예전의 그 ‘조선’이 아니라는 생각에 아베도 적잖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베에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한국정부가 22일까지 지소미아(GSOMIA)를 종료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예상 밖이었다. 북한의 위협에 노출된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의 군사정보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정보가 있다하더라도 한국으로부터 직접 전달되는 군사정보는 일본의 국가안보에 더 없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한국이 지소미아를 종료하겠다고 하면 일본은 자체 정보 외엔 미국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부담이고 돈이다.

일본보다 더 당황한 미국이 나서서 대화와 압박을 병행하고 있지만 한국 입장은 강경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국민과의 대화’에서 “일본이 안보상으로 신뢰할 수 없다고 하면서 군사정보는 공유하자고 한다면 모순되는 태도가 아닌가”라며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베의 태도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쯤에서 아베가 ‘경제전쟁 취소’ 운운하며 발을 빼는 순간 ‘아베의 시대’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베는 이래저래 출구를 찾기 어려운 형국으로 빠져 들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느닷없이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아베의 손을 들어 주고 있다. 황 대표는 패스트트랙 법률안 외에도 지소미아 파기를 철회하라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패스트트랙 3법은 조만간 국회 본회의에 자동으로 부의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지소미아 파기는 일본 아베 정권의 거짓과 망언, 오만과 방자한 언동에 대한 한국정부의 주권적 결단이다. 그럼에도 한국정부를 비난하며 거꾸로 아베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황교안 대표는 도대체 어느 나라 정치인인가. 역대 어느 정치인이 일본의 국익을 위해 단식투쟁까지 벌인 사람이 또 있었던가. 피가 거꾸로 솟고 억장이 무너질 지경이다. 아무튼 아베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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