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전국체전, 지난 100년과 앞으로 100년
[스포츠 속으로] 전국체전, 지난 100년과 앞으로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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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1920년 11월 4일, 고종이 ‘인재를 배양하라’는 뜻으로 친히 학교 이름을 지어준 배재고보에서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가 열렸다. 참가 선수부족으로 선수보다는 관중이, 경기보다는 초등학교 운동회처럼 축제 중심의 분위기가 돋보였던 대회였다고 당시의 신문들은 전했다.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시구로 시작된 전조선야구대회는 민족의 자존심과 독립의 염원을 안고 출발했다. 배재고보에서 열린 야구대회가 전국체전 제1회 대회가 된 것은 같은 해 7월 출범한 조선체육회가 종합체전을 개최할 능력을 갖추지 못해 먼저 종목별 대회로 경험을 축적해야 했기 때문이다.

야구는 구한말 미국 선교사를 통해 구기종목중 가장 먼저 한반도에 들어왔다. 서재필, 이승만 등 개혁적인 독립운동가들은 배재고보 창시자인 아펜젤러 목사와 함께 운동장에서 야구매트, 글러브 등을 갖고 야구 경기를 함께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야구가 전국체전 제1회 종목대회를 장식했던 것은 시대적 상황의 반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체전은 자연히 출발부터 시대적 흐름과 함께 독립과 저항운동의 상징으로 간주되었다.

그로부터 꼭 100년 후. 제100회 전국체육대회가 지난 4일 서울 잠실운동장에서 화려한 개막식을 가졌다. 화려한 영상과 무대로 꾸며진 이날 개막식은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100년을 다짐하는 화합과 결속의 자리였다. 1988 서울올림픽 주제가인 ‘손에 손잡고’가 나오자 관객들과 참가자들은 모두 31년 전 서울올림픽 감동을 다시 느끼듯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경기장 원형 지붕엔 무한을 뜻하는 인피니티(∞) 모양의 흰색 조형물을 설치해 그동안 전국체전이 낳은 수많은 체육인들을 상징화했다.

전국체전은 일제시대에는 민족의 설움을 해소하고 자존심을 일으키게 하는 동력이 됐으며 해방이후 전쟁과 정치적인 혼란기를 거치면서도 희망찬 국가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이 됐다.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며 세계 스포츠 10대 강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체전이 큰 밑거름 역할을 했다. 전국체전은 체육의 근대화와 과학화에 기여하며 많은 스타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일제 치하였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첫 태극기를 달고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딴 레슬링 양정모, 1988 서울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몬주익 영웅’ 황영조, 2008년 베이징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 2010 밴쿠버올림픽 피겨 여왕 김연아 등 수많은 한국스포츠 영웅들이 전국체전에서 기량과 실력을 쌓아 세계무대 정상에 올랐다.

전국체전은 이제 지난 100년의 빛나는 성과를 토대로 앞으로 100년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 전국체전이 앞으로 역점을 기울여야 할 것은 통일에 대한 민족의 염원을 잘 담아내는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국체전 100주년 기념사에서도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이 열리는 날을 기원한다”고 말했다. 지난 해 남북은 정상 간 합의문에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을 추진하기로 합의했으며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를 적극적으로 후원하기로 했다.

일제의 엄혹한 시기, 독립의 꿈을 키우며 이상재 선생과 같은 선각자의 시구와 함께 부푼 희망의 첫 발을 내딛던 전국체전이 온갖 민족의 시련과 좌절 속에서도 지난 100년 화려한 꽃을 피웠듯이 앞으로 100년 통일의 무대를 발판으로 한국스포츠의 세계화를 이끌어나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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