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뜨거운 손(hot hand)’ 현상은 미국 농구에서 나왔다. 슛을 일단 성공시킨 선수가 이어지는 다음 슛을 성공시킬 것이라 믿는 인지적 편향성을 말한다. 관중들은 물론 선수, 감독들도 슛발이 받은 선수를 크게 믿는 경향이 많다. 일단 발동이 걸린 선수는 뜨거운 손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집중적으로 슛기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뜨거운 손은 지난 1985년 심리학자이자 행동경제학자인 아모스 트버스키와 톰 길로비치가 한 논문에서 처음으로 소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2013년 스탠포드대에서 메이저리거들을 상대로 분석한 연구에서도 뜨거운 손 현상이 효과가 있고, 유의미한 것으로 발표됐다. 뜨거운 손 현상은 스포츠 분야에서 시작해 소비자 행동과 판매, 마케팅 등 다양한 영역에 적용됐다.

뜨거운 손 현상을 생각하게 된 것은 26일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두산 베어스가 키움 히어로즈를 따돌리고 4연승으로 7전4선승제의 시리즈를 여유있게 끝냈기 때문이다. 두산 선수들은 시리즈 내내 안타를 치고 나갈 때마다 한 손을 들어 올려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는 듯한 동작을 선보였다. 두산 선수들의 설명대로라면 ‘이 순간을 기억하자’라는 의미였다는데 마치 발동 걸린 손을 흔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선수들은 모두가 뜨거운 손을 가진 것처럼 느껴졌다. 4승 중 3승을 모두 뒤집기에 성공했다. 한 번 발동이 걸리면 키움 선수들은 두산 선수들의 파죽지세의 공세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1, 2차전을 9회말 끝내기 승리로 장식했으며 최종 4차전도 3-8의 승부를 연장전까지 몰고가 역전을 할 수 있었다. 4차전서 두산은 4회 1점을 따라붙더니 5회 5점을 뽑아 9-8로 역전한 뒤 9회말 2사후 실책으로 동점을 허용했으나 곧 10회초 2사3루에서 오재일이 2루타를 쳐 역전 타점을 올렸고, 후속 김재환의 안타로 추가점을 보탰다.

사실 정규리그 양팀 전적을 보면 키움이 9승7패로 앞서 있어 한국시리즈에서 그렇게 허망하게 무너질 것은 아니었다. 최소한 장군 멍군식으로 승패를 주고니 받거니 할 것으로 예상됐는데 결과는 의외였다. 따라서 정규 리그와 다른 흐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당연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한국시리즈는 단기전으로 치러지는 특징으로 인해 한 번 기운을 받는 팀이 상승세를 이어 우승까지 내달리는 경우가 많다. 역대 한국시리즈 진출 팀들이 1차전에서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2승을 먼저 거둔 팀이 대부분 정상까지 밟는 확률이 높았던 것은 단기전 승부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 선수들이 뜨거운 손을 맛보게 되면 방망이에 불이 붙고, 수비에서 상대의 안타성 타구도 거침없이 막아낼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떤 기회에 의해 한 선수에서 다른 선수로 뜨거운 손맛이 전해지는 순간, 유무형의 전력이 총체적으로 발휘되는 수가 많다. 두산은 1차전 끝내기 안타, 4차전 결승타의 주인공이 된 MVP 오재일과 4차전 연장 10회말 아웃 카운트 2개를 잡고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령 세이브를 달성한 배영수(38)까지 곰같은 뚝심을 보였다. 배영수는 팀내 투수 13명 중 유일하게 출전기회가 없다가 투수 이용찬을 독려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김태형 감독이 투수 교체 없이 마운드에 방문할 수 있는 제한 횟수(2회)를 넘기는 바람에 갑작스럽게 출격하게 되는 우연을 맛보았다. 이미 뜨거워진 벤치와 동료 선수들의 기운을 받은 덕분인지 배영수는 긴장된 분위기를 잘 틀어막을 수 있었다.

비록 뜨거운 손 현상은 과학적인 객관성을 완전히 입증한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스포츠라는 승부의 세계에서 인간의 심리를 설명해주는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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