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암흑의 시간이었다. 새로운 플랫폼과 뉴미디어가 모든 정보를 신속하게 전하는 대명천지아래에서 모든 언론 매체가 침묵을 지켰다. 다만 ‘릴레이 문자중계’를 받아 경기 상황을 상상해볼 뿐이었다. 평양-말레이(아시아축구연맹 본부)-서울을 잇는 문자중계는 마치 대중미디어 이전시대 봉화를 올리는듯한 원시적인 방법이었다. 적막 속에서 벌어진 경기에선 골도 침묵을 지켰다. 지난 15일 월드컵 예선 평양 남북축구에서 벌어진 황당한 광경이었다.

5만 수용의 김일성 경기장은 스탠드에는 관중이 없었고, 인공기 핀을 정장에 단 인판티노 FIFA 회장 등 관계자만이 경기를 지켜봤으며 TV 생중계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 기자들만 몇명 있었을 뿐, 남한 취재진은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야말로 깜깜이로 치러진 경기였다. 영국 BBC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더비”라고 칭하며 이날 경기를 비상식적인 토픽으로 보도했다.

북한이 무관중, 무중계, 무취재진으로 경기를 치른 것은 그동안 원정팀에게 ‘무덤’으로 불리었던 김일성 경기장에서 한국에 지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 아닌가하는 분석이 나온다. 북한은 국기로 간주하는 축구에서 한국에 패하게 되면 김일성체제로 공고화한 절대독재주의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은 FIFA 랭킹 37위, 북한은 113위로 객관적인 전력에서 북한보다 크게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던 터였다.

지난 수십년간 남북한에서 축구만큼 민족의 동질감을 확인시켜 준 종목은 없었다. 북한은 지난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아시아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본선 8강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한국은 1983년 박종환 감독의 청소년팀이 멕시코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4강에 올랐고, 2002 한·일월드컵에서 4강신화의 기적을 연출했다. 남북한은 축구에서 탁월한 성과를 올리며 민족에게 기쁨과 희열을 안겨주었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 직후 평양에서 해방 이후 사상처음으로 열린 남북한 통일축구는 남북한 모두 축구에 대한 민족적인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통일을 향한 화해와 염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서 남북한이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나란히 진출했을 때, 북한 중앙TV가 남아공과 멕시코전을 포함해 4경기를 국내 월드컵 방송 중계권을 갖고 있던 SBS TV의 허가를 받지 않고 국내서 방송된 화면을 무단으로 녹화로 내보낸 것을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축구에 대해 큰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는 북한 사람들의 정서를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번 남북 축구경기에 거는 기대가 컸었다. 지난 해 평창 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와 여자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이후 지난 해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 추진에 합의를 하면서 남북스포츠 교류에 대해 밝은 전망을 예상했다. 하지만 이번 남북 축구경기가 북한의 일방적인 통제로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남북한 스포츠에 대해 앞으로 깊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과 평양에서 잇달아 남북정상회담을 갖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판문점에서 미북 정상회동을 추진했지만 북한 비핵화에 관한한 별다른 합의를 이루어내지 못했다.

북한은 월드컵 예선 남북한 평양경기에서마저 냉랭한 모습을 드러내며 은둔의 장막을 좀처럼 걷어내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국제축구경기에서 ‘몬도가네’식의 기이한 행동을 한 북한의 진짜 속내는 어떤 것일까. 이를 제대로 알았으면 속이 시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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