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태풍 ‘타파’가 할퀴고 지나간 뒤의 새벽 밤 하늘은 맑고 깨끗했다. 일찍 잠에서 깨어나 문득 올려다 본 새벽 하늘에는 이례적으로 총총히 빛을 밝히는 별들이 많이 보였다. 태풍으로 미세먼지와 더러운 공기가 싹 쓸려 나가며 모처럼 도시에서도 별들의 잔치가 펼쳐진 것이다. 천진난만하고 낭만의 꿈에 부풀어있던 어릴 적 동심을 자극했던 별들을 떠오르게 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임명을 둘러싸고 전쟁터가 된 정치판과는 다른 자연의 모습이었다. 자연의 질서는 권력과 부, 명예와 승리 등으로 얽힌 복잡한 인간 세상의 세파와는 상관없이 도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누가 영웅이 되던, 어떤 이가 패배자가 되던 관심도 없었고, 태고적부터 그렇게 있었던 것이 자연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맑고 깨끗한 밤하늘은 하루, 이틀도 지나지 않아 인간들이 만들어낸 미세먼지와 불순한 공기로 인해 잿빛 색깔로 변하고 말았다.

자연처럼 조화롭게 어울려 살아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욕망일 것이다. 남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살며 서로 협동하며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인간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마음은 누구나 품었을 법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음에 따라, 사회적 환경이나 개인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 마음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동안 너무나 많이 벌어진 정치와 국제문제에서의 싸움판도 변화하는 인간들의 속성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랫동안 스포츠계에 몸담고 있으면서 ‘스포츠는 깨끗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스포츠는 정신과 육체의 고귀한 이상을 구현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치열한 경쟁을 치르면서도 협동정신을 강조하는 것은 이상적인 인간상을 창출하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경기 중 반칙을 엄벌하고, 경기를 방해하는 자에게 출전을 금지함으로써 스포츠의 가치는 빛이 날 수 있다.

사람들의 이해와 대립, 증오와 갈등, 고통과 환호 속에서도 스포츠가 사회적 제도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단순한 스포츠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서로 합의한 규칙을 철저히 지키는 ‘페어플레이(FAIR PLAY)’ 정신이다. 긴장감 속에 경기를 치르면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정신이다. 페어플레이에는 공정과 정의라는 함의가 포함돼 있다. 개인의 의지를 충분히 발휘하면서도 지나친 사리사욕을 억제하고 공적인 활동을 유도하는게 공정과 정의가 추구하는 가치이다. 가장 많은 선수들이 경기를 갖는 럭비가 몸과 몸이 격렬하게 부딪치는 경기를 끝내고 나면 심판관이 ‘NO SIDE'라는 경기 종료 선언과 함께 선수들이 서로 땀을 닦아주고 격려를 하는 모습은 가장 인간다운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스포츠라고 해서 ‘청정지대’만은 아니다. 경기장 폭력, 승부조작, 약물복용 등 일탈적인 사회적 행위들이 일어나 나쁜 감정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수십년간 보아왔던 많은 스포츠 경기는 뜨거운 감동과 환호를 불러 일으키며 만족스러운 내용으로 ‘사회적 순기능’이 월등히 많았다고 생각한다. 스포츠가 계층, 지역, 진영과 이념 논리로 혼란을 이룬 국민들의 마음을 한데 모으는데 크게 기여를 했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통해 배우고 익힌 공정과 정의에 대한 관점과 사고방식이 일상적인 생활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자리잡으면 우리의 시대적 고민을 해결해 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모처럼 맑은 새벽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복잡한 시대의 잔상들을 생각하며 스포츠의 참 가치를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