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속으로] 남아공 럭비팀, ‘럭비는 인종주의적이다’라는 현대 스포츠의 역설을 깼다
[스포츠 속으로] 남아공 럭비팀, ‘럭비는 인종주의적이다’라는 현대 스포츠의 역설을 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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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가장 저명한 현대 사회학자 중 한 명인 앤소니 기든스(81)는 20대에 런던경제대학원 석사논문으로 ‘영국의 스포츠와 사회’라는 논문을 썼다. 아버지가 사무직 노동일을 하며 어렵게 생활했던 기든스는 집안의 희망을 안고 가족 중 처음으로 대학에 진학했다. 어린 시절 공부보다는 축구에 더 열성적이었으며, 그런 이유 때문에 석사학위 논문을 스포츠의 사회사에 대한 것으로 썼다. 근대 스포츠의 발상지인 영국의 사회문화적 계층구조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논문에서 기든스는 중산층 스포츠인 럭비는 원래 경쟁적이지 않았던 반면 노동자 등 하층계급 스포츠였던 축구는 늘 경쟁적이었다고 밝혔다. 부르주아는 개인주의적이고 경쟁적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경쟁보다는 규율과 질서를 강조하는 럭비를 선호했고, 프롤레타리아는 집단 환경에서 개인을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에 축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며 경쟁성을 지향했다는 것이다. 계급적 차이와 한계 등으로 인해 ‘럭비는 위계적이지만 축구는 민주적이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영국에서 파생된 럭비와 축구 등 근대스포츠는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팽창으로 세계 각지로 퍼져나갔으나 이런 종목적 성향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럭비가 영연방 국가에서 주로 성행하며 ‘백인스포츠’라는 지엽성을 면치 못한데 반해, 축구는 흑백이 함께 즐기는 보편적인 세계적인 종목으로 자리잡았던 것은 이런 특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 2일 일본 요코하마국립경기장에서 열린 2019 럭비 월드컵 결승전에서 남아공은 주장 시야 콜리시를 비롯 흑인 선수 6명이 백인 선수들과 멋진 호흡을 맞춰 잉글랜드를 32-12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한 것을 보고 인종주의가 주류를 이뤘던 럭비의 벽이 마침내 무너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아공 럭비팀은 지난 1995년 넬슨 만델라 남아공 대통령이 악명높은 인종 차별 타파를 위한 통합의 상징으로 적극 후원을 해 사상 처음으로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우승을 차지한 바 있었는데, 당시 흑인 선수는 한 명 뿐이어서 진정한 흑백 화합의 우승이라고 평가하기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크리스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영화 ‘인빅터스’에서 인종 화합의 무대로 당시의 우승을 높이 치켜 세웠지만 엄밀하게는 백인들의 잔치에 흑인 1명이 방점을 찍었을 뿐이었던 것이다.

1995년 첫 우승 이후 남아공은 여전히 백인들이 잘 살고, 흑인들은 못하는 사회적 계층구조가 달라지지 않았으며 백인 상류층만 모인다는 럭비 대표팀은 백인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이번 월드컵 우승은 분명 달랐다. 대표팀 주장에 흑인이 127년만에 역사상 최초로 뽑혔으며 주전 15명 중에서 6명 흑인멤버가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조별리그에서 진 팀이 월드컵을 우승한 것은 남아공이 처음이었는데 그만큼 흑백 주전 전원들이 정신력과 투지로 잘 짜여진 조직력을 과시했다는 것을 뒷받침해준다. 흑인 주장 콜리시는 지난 2007년 남아공이 월드컵을 두 번째로 우승을 차지했을 때, 집에 TV가 없어 동네 어른집에서 경기를 봤다. 이때에도 남아공 대표팀에는 흑인이 1995년때보다 1명 늘어난 2명 뿐이었다.

근대성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스포츠는 이제 전 세계적으로 영역이 넓어지면서 각국의 사회문화적 구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스포츠의 가치인 개방성, 실용성, 보편성 등에 대한 인식이 정착해가면서 스포츠를 즐기는 사회문화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 남아공에도 흑인과 백인들의 차별은 역사 속의 이야기가 되는 듯하다. 남아공 럭비팀은 이번 월드컵 우승으로 인종 차별과 불신으로 저주받은 땅에 기적같은 인류애의 꽃을 지상에 뿌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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