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속 정치이야기] 순수견양(順手牽羊)
[고전 속 정치이야기] 순수견양(順手牽羊)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순수견양은 삼십육계 가운데 12번째 계략이다. 속담에 ‘가는 길에 짐삯’이라는 말이 있다. 길을 나설 때 마침 대문 앞에 과자 한 봉지가 있다고 치자.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지만 가는 길에 집어넣는 것이 좋다. ‘엎어진 김에 돌 하나라도 주워 넣는다’는 속담도 있다. 당장은 필요가 없지만 장차 도움이 될지도 모르므로 대세에 지장이 없다면 일단은 주머니에 넣어두자! 티끌도 모으면 태산이 되므로! 순수견양의 전개과정은 다음과 같다.

첫째, 본래의 목적이 있다. 둘째, 그 외에도 어렵지 않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이익이 있다.  셋째, 누구도 알지 못하게 또는 누구의 불평도 사지 않고 그것을 얻을 수 있다. 넷째, 그것을 손에 넣는다고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지장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에서는 위험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작은 이익 때문에 본래의 목적달성에 지장을 초래하기도 한다. 순수견양의 본래목적은 한 가지에만 집중하지 말고 시야를 넓혀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이다. 순수견양에 넘어 간 대표적인 사례는 소설 ‘삼국지’에 나온다.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獻帝)는 장안으로 납치됐다가 간신히 탈출했다. 그러나 반군의 기마부대가 황제를 추격했다. 위기에 처하자 동승(董承)은 모든 보물을 길에 뿌리라고 지시했다. 반군이 길바닥에 흩어진 보물을 줍는 동안 동승은 헌제를 모시고 멀리 도망쳤다. 반군은 작은 보물을 얻었지만 황제라는 큰 보물은 놓치고 말았다. 따라서 작은 이득을 챙기는 것이 중요하더라도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헛일이 되고 만다.

‘서유기(西遊記)’ 제16회를 보자. 삼장법사 일행은 서역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길에 관음원(觀音院)을 지나게 됐다. 마침 밤이 되어 일행은 관음원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했다. 관음원의 방장은 삼장법사가 입은 가사가 탐이 나서 일행이 잠이 든 후에 불을 질러 죽이기로 했다. 경호원 노릇을 하던 손오공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잠자리에서 뒤척이던 그는 밖으로 나왔다가 방장이 제자에게 불을 지르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뛰어들어 여의봉으로 두들겨 패고 싶었지만 스승인 삼장법사가 이유도 없이 난동을 부린다고 꾸짖을까 걱정이 되어 참고 있었다. 궁리를 하던 손오공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그렇게 해라! 순수견양으로 네 생각을 거꾸로 이용할 것이다. 내가 헛일로 만들어 주마!”

손오공은 담요로 삼장법사와 백마를 덮어씌워 피하게 한 다음 입으로 바람을 불어 불길이 더 타오르게 했다. 불은 순식간에 방장과 그의 제자가 있는 곳까지 잿더미로 만들었다. 코미디와 같지만 이와 비슷한 민간고사도 있다. 어떤 사람이 소를 훔쳤다가 발각돼 관청으로 끌려왔다. 재판관이 내막을 묻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길을 가다가 보니 새끼줄 하나가 떨어져 있더군요. 누가 주어가는 사람도 없어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으로 가져와 기둥에 묶어 두었는데 그 끝에 소가 한 마리 달려 있었습니다. 소가 저를 따라온 것이지 제가 소를 훔친 것은 아닙니다.”

이 고사에는 순수견양의 함의가 그대로 들어 있다. 관한경(關漢卿)의 원극 ‘울지공단편탈삭(尉遲恭單鞭奪槊)’과 ‘수호전(水滸傳)’ 제99회의 전투장면에도 순수견양이라는 술책이 나온다. ‘순수’라는 단어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첫째는 ‘순리적’이라는 뜻이다. 눈앞에 있는 이익은 우선 챙겨야 한다. 둘째는 손에 딱 맞아서 ‘사용하기에 편리하다’는 뜻이다. 셋째는 ‘차제에’ ‘어떤 일을 하는 김에’라는 뜻이다. 따라서 순수견양이란 기회를 노려 남의 양 한 마리를 끌고 가는 것처럼, ‘남의 물건을 슬쩍 훔치는 것’을 가리킨다. 얄미운 것 같지만 제대로 적용하면 심모원려가 되기도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