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종교적 신념 등 병역거부도 정당한 사유에 포함된다고 판결함으로써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을 주장하며 병역을 거부하면 형사처벌을 받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대법원은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했지만, 국회는 아직 대체복무제를 입법하지 못했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지금 정부는 부랴부랴 안을 다듬고 있다. 향후 병역거부자들은 교정시설에서 현역병 18개월의 2배 수준인 36개월 합숙 근무하는 안이 가장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역병들이 상대적으로 박탈감을 갖지 않게 하고 양심적 병역거부가 병역기피 수단으로 활용되지 못하도록 충분한 사회적 토의와 검증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현역병 대상자로 확정된 많은 젊은이들이 정부에 대한 불만과 병역의무에 대해 상당한 불신과 박탈감을 표출할 것이다.

최근 대법관 8명은 병역거부자의 가정환경, 성장과정, 학교생활, 사회경험 등 전반적인 삶의 모습을 살피는 것으로 양심을 검증할 수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 많은 병역거부자들의 성장환경 조사, 사회생활 조사를 누가 한다는 말인가. 대법관들이 행정력을 동원해 직접 조사할 것인가. 병역거부로 주목받고 있는 곽모씨는 2016년 10월 현역 입영통지서를 받고도 입영일로부터 사흘이 지날 때까지 입대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대법원의 판결 이후 기회를 잡은 여호와의증인 신도뿐만 아니라 곽씨와 같이 신도가 아니어도 ‘강제징집 제도 자체가 위헌’이라는 신념을 가진 남성들은 시민단체들과 결합해 더욱 확대된 단체행동을 통해 자신들의 양심적 병역거부를 주장할 것이다. 곽씨는 강제징집 제도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않는 급여를 지급하고 개인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 제도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현역병 입영통지서를 받고 국가의 부름에 따라 입대한 일반 젊은이들은 개인 자유를 침해당하고 비양심적이고 그저 헌법을 따르는 바보들인가. 최근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여호와의증인 가입문의가 쇄도하고 군대 안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부 젊은이들도 문제지만, 어릴 때부터 군대 입대에 대한 기피증과 두려움, 징집제를 거부하는 태도는 국가 안보 위기와 끊임없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40년 전 현역병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 36개월, 20년 전 현역병들은 자신의 젊은 시절 26개월을 국가에 의무적으로 봉사했다. 지금의 소수 젊은이들은 18개월 국가봉사도 아까워하며 기피하려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따르면 병역의무를 부과하는 징병제가 도입된 1950년경부터 현재까지 2만여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이유로 재판을 받고 있는 200여명은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종교적 양심과 더불어 징병제 자체를 문제 삼는 일반적 신념이나 전쟁·폭력에 반대하는 평화적 양심 등도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을 경우 앞으로 복무심사기구와 검찰은 과연 누가 양심의 진정성이 있고 없는지를 판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군대에 가지 않기 위해 6개월 전부터 여호와의증인에 다니는 젊은 신자, 자신이 핵을 증오하는 평화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젊은이, 민족주의자라고 주장하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판단할 것인가.

이제 한국사회는 1950년경부터 이어져 온 징병제 시스템의 개정과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대처 방향의 지각변동 속에서 무엇이 정말로 양심적이고, 비양심적인지 판단해야 하며, 지금도 청춘을 바쳐가며 고생하고 있는 현역병들의 고충을 이해하고 올바른 결과를 생산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단어부터 ‘주관적 병역거부’로 바뀌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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