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 살해에 실패한 조조는 동문 밖을 빠져나가 줄행랑을 놓았다. 뒤쫓던 병사들이 허탕치고 돌아오자 살해 음모에 공모자가 있다고 생각한 동탁은 천하에 방을 붙여 조조의 목에 천금과 만호후의 현상을 걸었다.

조조는 성문을 벗어나자 고향 초군을 향해 달아나는데 중모현이란 고을을 지나다가 문지기 군사한테 잡혀서 현령에게 문초를 받게 됐다. “너는 무엇을 하는 자이며 어디를 향해 가느냐?”

“나는 객상(客商)인데 성은 황보라 합니다.” 조조는 거짓말로 신분을 감추었다. 현령은 한동안 조조를 유심히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전에 낙양에 있을 때 그대를 본 일이 있다. 그대는 조조가 아닌가? 속이지 말라!” 조조는 속으로 뜨끔했다. 현령은 말을 마치자 조조를 옥에 가두라 명했다. “이 자를 옥에 가두라. 내일 서울로 잡아가서 현상금을 청하리라.” 현령은 조조를 옥에 가둔 후에 옥리한테는 술과 밥을 후하게 대접하라 했다. 밤이 깊어지자 현령은 다시 토인한테 분부를 내렸다. “아까 잡아서 옥에 가두었던 죄인을 뒤채로 데리고 오너라. 심문할 것이 있다.” 토인이 현령의 분부를 받아 옥에 가서 조조를 데리고 뒤채로 들어왔다.

“내가 들으니 승상께서는 너를 후하게 대접했다 하는데 너는 어찌해서 스스로 화를 도모했느냐?” 조조는 현령이 밤중에 뒤채까지 데려와서 심문하니 까닭이 있다고 생각했다.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기러기나 따오기의 뜻을 알겠느냐? 너는 나를 낙양으로 잡아가서 현상금을 받겠다고 했으니 속히 낙양으로 이송할 뿐 더 묻지 마라.”

현령은 토인들을 돌아보고 명령했다. “너희들은 나가서 내가 부를 때까지 물러가 있거라.” 현령은 주위를 물리친 후에 조조 앞으로 다가앉았다. “그대는 나를 작게 보지마라. 나는 본시 속된 관리가 아니다. 주인을 못 만났을 뿐이다.”

그의 말에 조조도 숨김없이 가슴을 털어 놓았다. “나는 조상 대대로 한(漢)의 녹을 먹고 자란 사람이다. 보국할 마음이 없었다면 금수보다 나을 것이 무엇 있으랴? 내가 몸을 굽혀 동탁을 섬긴 것은 기회를 보아 역적을 없애려던 것이었다. 이제 일이 실패를 했으니 이것이 천의인가?”

현령은 조조의 말에 손수 그의 결박을 풀고 윗자리에 앉게 한 뒤 넙죽 절을 했다. “공은 참으로 천하의 충의지사올시다.” 조조도 황망히 맞절을 하며 현령에게 이름을 물었다. “내 성은 진이고, 이름은 궁이요. 자는 공대라고 합니다. 나는 이곳에서 현령으로 있으나 늙은 어머니와 처자들은 모두 동군에 있습니다. 벼슬을 버리고 공을 따라가서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조조는 기뻤다. 그날 밤에 진궁은 노자를 마련해 조조와 함께 변복을 하고 칼 한 자루씩을 등에 맨 뒤에 조용히 관청을 벗어나 고향을 향해 말을 달렸다. 조조와 진궁이 사흘 동안 말을 달려 성고 지방에 당도했을 때 어둑어둑 날이 저물기 시작했다. 앞서 가던 조조가 채찍을 들어 숲이 무성한 곳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마을은 여백사라고 하는 분이 있는데, 우리 부친과 결의형제를 한 분이오. 집안 소식도 들을 겸 하룻밤 묵어가는 것이 어떻겠소?”

진궁이 찬성을 하자 두 사람은 집 앞에서 말을 내려 주인 백사를 찾았다. 기별을 받은 백사가 반색을 하며 달려 나와 조조를 맞이했다. “너희 부친께서는 진류 땅으로 몸을 피하셨다. 조정에서 용모 파기를 돌려 너를 잡으려 한다는 구나. 어떻게 무사히 이곳까지 왔느냐?”

조조는 여백사에게 전후의 지난 일을 소상히 말한 뒤에 만약 진 현령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뼛가루가 되고 몸은 갈가리 찢어졌을 것이라고 하소연을 했다. 그 말에 백사는 진궁을 향해 넙죽 절을 했다. “만약 사도가 아니셨다면 조씨네는 멸문이 됐을 것입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사도께서는 안심하시고 이제 좀 쉬십시오. 오늘 밤은 누추하나마 제 집에서 묵어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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