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극악무도한 동탁을 시살하려던 교위 오부는 실패해 죽음을 당했다. 한편 발해에 있던 원소는 사도 왕윤에게 밀서를 띄워 역적을 도모하면 반드시 군사를 거느려 쳐들어가겠다고 했다. 왕윤은 조정의 구 신하 공경들을 집으로 불러 생일이라 거짓 핑계하고 잔치를 베푼 자리에서 동탁을 쉽게 죽이지 못함을 눈물로 호소했다.

조정 구신들과 함께 울음바다가 된 자리에서 한 사람이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조정에 가득한 공경 대부님들아, 밤새도록 울고, 날이 밝은 후에 온종일 울고, 또 다시 밤이 되어 울기만 한다면 울음으로 능히 동탁을 죽일 수가 있겠소?”

조조의 드높은 웃음소리에 모든 사람들의 울음이 뚝 끊어져 버렸다. 왕윤이 쳐다보니 효기 교위 조조였다. 왕윤이 노했다. “너의 조상도 한나라 조정에서 녹을 먹은 사람인데 나라의 은혜를 갚을 생각은 못 하나마 도리어 웃음으로 답하려 하니 네가 그래 사람이란 말이냐?”

왕윤은 젊은 조조를 점잖게 꾸짖었다. 조조가 웃음을 그치고 대답했다. “제가 웃은 것은 까닭 없이 웃은 것은 아닙니다. 여러 어른께서 동탁을 죽일 계책을 한 가지도 세우지 못한 채 답답하게 울기만 하시니 딱한 노릇이 아닙니까? 조조가 비록 재주는 없으나 동탁의 머리를 끊어서 도문에 단 후에 천천히 사례를 하겠습니다.”

조조의 말은 장했다. 왕윤은 자리를 고쳐 앉아 경건하게 조조에게 물었다. “맹덕은 어떤 고견이 있는가? 좋은 계책이 있으며 노부에게 가르쳐 주게.”

왕윤의 말에 조조가 대답했다. “요사이 제가 몸을 굽혀서 동탁을 섬기는 것은 실상인즉 틈을 타서 동탁을 도모해 보려는 것입니다. 이제 동탁은 자못 저를 신용하고 있습니다. 듣자오니 사도께서는 칠보를 낀 보도를 가지셨다 합니다. 잠깐 저에게 빌려 주시면 승상부로 들어가 동탁을 찔러 죽이겠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는 죽어도 한이 없겠습니다.”

왕윤은 입이 떡 벌어졌다. “맹덕이 과연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천하를 위하여 다행한 일일세.”

왕윤은 말을 마치자 친히 잔에 술을 가득 부어 조조에게 권했다. 조조는 왕윤이 권하는 술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 술을 뿌려 맹세하는 뜻을 표한 후에 단숨에 쭉 들이켰다. 조조가 맹세하는 것을 본 왕윤은 칠보 난을 박은 화려한 보도를 끌러 조조에 건네주었다. 조조는 무릎을 꿇어 두 손으로 칠보도를 받았다.

“그럼 일을 성공시킨 뒤에 다시 와서 뵙겠습니다.” 조조는 왕윤과 모든 사람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한 뒤에 물러나갔다.

왕윤의 집에 모였던 모든 대신들은 조조가 기어코 성공하기를 축수하면서 술을 한 잔씩 더 마시고 헤어졌다.

이튿날 조조는 칠보도를 허리에 차고 승상부로 들어가 시자에게 물었다.

“승상은 어디 계시냐?”

“작은 채에 계십니다.”

조조가 작은 채로 들어가 보니 동탁은 윗자리에 앉았고 여포가 모시어 옆에 서 있었다. 동탁은 조조를 보자 반가이 맞이했다.

“맹덕이 오늘은 어찌 늦게 오는가?”

“소인의 말이 파리하고 늙어 걸음이 시원찮아 늦었습니다.”

“나한테 서량에서 바친 말이 여러 필이 있다. 봉선이 네가 친히 가서 좋은 말 한 필을 골라 가지고 와서 조조에게 주어라.”

동탁의 말을 들은 여포는 읍을 하고 물러나갔다. 조조는 마음속으로 되었구나 하고 좋아했다.

‘이 역적 놈이 오늘 내 손에 꼭 죽는구나.’

조조는 속으로 생각하고 칼자루를 막 빼려하다가 원체 동탁의 힘이 센 것을 생각하니 두려워서 얼른 칼자루를 뽑을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동탁은 워낙 몸집이 비대해 숨이 가빠서 오래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슬며시 자리에 눕혀 육중한 몸을 벽을 향하여 돌아누웠다. 기막히게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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