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목에 현상금이 붙은 조조는 중모현에서 군졸에게 붙잡혀 옥에 갇혔다. 그곳 현령 진궁의 도움을 받아 함께 동지가 되어 말을 타고 도망쳐 고향을 향해 사흘을 달리다가 성고 지방에서 조조는 자신 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은 여백사를 찾아 갔다. 여백사는 반가이 두 사람을 맞이하며 하룻밤 편히 묵어가라고 권했다.

여백사는 말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서 한참 만에 나와 진궁에게 말했다. “노부의 집에는 미리 마련한 좋은 술이 없습니다. 서촌으로 가서 술을 좀 구해 가지고 올 테니 잠깐만 기다려 줍시오. 참으로 죄송합니다.” 말을 마치자 여백사는 총총히 대문을 열고 나귀를 타고 나갔다.

조조는 진궁과 함께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한동안 앉아 있으려니 집 뒤에서 숫돌에 칼을 가는 소리가 들렸다. 조조는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다. “이 소리는 칼 가는 소리 아닌가?” 그 말에 진궁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조조가 나직이 말했다. “여백사가 아무리 우리 부친과 결의형제를 했다지만 나의 친아버지가 아닌 이상 의심이 아니 날 수가 없소. 그가 관가에 고발하러 간 것이 아닌가?”

두 사람은 조용히 초당 뒤쪽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이자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묶어서 죽여 버리는 것이 어떤가?”

걸걸한 사내의 목소리였다. 조조는 손가락으로 진궁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틀림없소. 우리를 묶어서 죽이자는 말이오. 만약 우리가 먼저 손을 쓰지 않으면 반드시 죽고 말 것이요.”

조조는 말을 마치자 진궁과 함께 초당 뒤를 갑자기 습격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도륙을 내었다. 한꺼번에 죽은 사람이 여덟 명이나 됐다. 조조는 다시 남은 사람이 없나 싶어 부엌으로 달려 들어가니 손님에게 대접하려고 잡아서 묶어 놓은 돼지 한 마리가 놓여 있었다.

진궁은 기가 막혔다. 노비들이 칼을 간 것은 돼지를 잡아 죽이려고 한 것이 분명했다. 공연히 죄 없는 사람을 여덟 명이나 죽여 놓았으니 진궁은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맹덕이 다심해서 좋은 사람들을 잘못 죽였구려.” 진궁이 탄식하자 조조는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두 사람은 지체할 여유가 없었다. 얼른 말을 타고 여백사의 집에서 도망치듯 멀리 급히 벗어났다.

두 사람이 두어 마장을 채 못 가서 여백사 노인이 나귀를 타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백사는 나귀 안장에 술 두 병을 달고 손에는 과채를 들고 오다가 조조와 진궁과 마주치자 큰소리로 외쳤다. “조카는 밤이 되는데 어디로 바삐 가려 하느냐? 사도를 뫼시고 어서 들어가자.”

“죄진 몸이라 오래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속히 떠나야겠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조조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내가 집안 하인들에게 분별해서 돼지 한 마리를 잡으라 했다. 사도를 뫼시고 빨리 들어가자.” 여백사가 재차 간청하는데도 조조는 아무 대꾸 없이 말채찍을 휘둘러 내달리고 말았다. 노인은 하는 수 없이 나귀를 돌려 무료하게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말을 달려 나가던 조조가 별안간 말머리를 돌려서 여백사 노인을 불렀다. “아저씨, 저기 오는 사람이 누굽니까?”

여백사가 조조의 물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이었다. 조조는 칼을 빼어 노인의 머리를 찍어 나귀 아래로 떨어뜨려 버렸다. 이것을 본 진궁은 깜짝 놀랐다.

“이게 대체 무슨 짓이오?” 진궁의 언성 높인 말에 조조는 태연히 대꾸했다. “백사가 집에 당도해 식구들이 모두 죽은 것을 보면 우릴 가만둘 리 만무하오. 동네 사람들을 다 풀어서 쫓아온다면 꼼짝 없이 화를 당할 테니 아니 죽이고 어찌 하겠소?”

진궁은 대단히 불쾌했다. “죄 없는 사람인 줄 알면서도 살상한다는 것은 엄청난 불의를 범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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