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호 변호사가 31일 천지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천지일보 2018.1.31
서기호 변호사. ⓒ천지일보

서기호 변호사 “증거부족 이유로 영장 기각한 건 부적절”

“윗선 보고 정황 담긴 임종헌 USB, 사법농단 수사 전환점”

[천지일보=명승일 기자] 법원이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25일 양승태 전(前)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 전직 고위 법관의 압수수색 영장을 또다시 기각했다. 지난 21일 압수수색 영장 기각에 이어 두 번째다.

법관 블랙리스트 1호로 알려진 서기호 변호사는 이날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법원에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는데, ‘제 식구 감싸기’ 측면에서 굉장히 부적절하다”면서 “더 큰 문제는 지난해 3월부터 이 사건이 법원 수뇌부에 의한 조직적인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임종헌의 개인적 일탈로 몰아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세 차례에 걸친 법원 내부 조사 과정에서도 모든 책임자를 임 전 차장으로 내세우고 임 전 차장과 관련한 문건만을 두고 외부에 공개했을 뿐”이라며 “그 ‘윗선’에 보고된 흔적이 담긴 부분은 의도적으로 누락해 왔다. 그러다 보니깐 이번 압수수색 영장도 같은 맥락에서 임 전 차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에 대해 기각됐다”고 지적했다.

서 변호사는 이번 사건이 임 전 차장의 단독책임이라고 볼 수 없는 건 법원행정처 조직 특성상 양 전 대법원장 지시 없이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2015년 11월경 임 전 차장이 스스로 작성한 상고법원 관련 문건이 있는데, 법원행정처 차장이란 사람이 자신이 보기 위해 그 문서를 작성할 이유가 없다”면서 “아랫사람들에게 보고하려고 문서를 작성할 이유도 없다. 당연히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에게 보고하기 위한 문서였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면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기조실)에서 작성한 문건 말고도 사법지원실의 형사심의관이 원세훈 재판에 대한 1심에서부터 동향분석과 예상쟁점 등을 정리해 왔어요. 그 문건이 대법원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되기까지 했습니다. 그 외에도 사법정책실, 전산정보관리국 등 법원행정처의 다른 부서에서도 작성한 문건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법원행정처는 지금 기획조정실을 제외한 나머지 사법정책실, 사법지원실, 전산정보관리국 컴퓨터상의 자료에 대한 제출을 거부하는 겁니다.”

서 변호사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모든 지시의 총책임자는 양 전 대법원장이고 상고법원 관련해선 박 전 처장의 역할도 컸다”며 “그럼에도 ‘윗선’에 대한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런 의혹만으로도 공모에 의한 범행 가능성에 대해 소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증거부족’이란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건 매우 부적절하다”고 비난했다.

서 변호사는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확보한 임 전 차장의 USB(이동식저장장치)에 대해 ‘사법농단’ 수사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그는 “여기에는 임 전 차장의 ‘윗선’ 보고 정황이 담긴 문건이 다수 있다고 검찰이 밝힌 상태라서 ‘사법농단’ 수사의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예상한다”고 밝혔다. USB가 발견되면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선 “당연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 변호사는 “검찰에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에서 자꾸 기각하고 있다”며 “일단 임 전 차장의 USB 조사와 그의 소환조사를 통해 추가 증거를 더 확보해야 한다. 이를 통해 보강한 다음 강제수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15일 형사조치 여부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천지일보 2018.6.15
[천지일보=강은영 기자] 김명수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해 15일 형사조치 여부 등을 포함한 후속조치 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천지일보 2018.6.15

법원행정처가 사법정책실이나 사법지원실, 재판자료나 이메일 등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제출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검찰 수사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이에 대해 서 변호사는 “일단 임 전 차장에 대한 강제수사는 가능한 상태다.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수사가 우선 진행돼야 한다”며 “그것을 통해 ‘윗선’에 대한 추가 증거를 확보하는 등 우회로를 통해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사건의 영장심사 등을 독립된 기구에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서 변호사는 “현재 검찰 수사의 문제라기보다는 피의자들이 모두 판사다. 그것도 전직 대법원장 등 최고위 법관들이기 때문에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면서 “지금 수사의 공정성보단 재판의 공정성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별법 제정을 통해 영장재판을 포함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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