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창의력 발달과 체험활동에 초점을 둔 ‘자유학기제’가 오히려 고소득층의 선행학습, 사교육 확대로 이어졌다는 KDI(한국개발연구원) 발표가 나왔다. 결과가 이렇게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현재 한 학기인 자유학기를 늘려 1년간 자유학년제 운영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학생들은 체험하기 싫은 반 억지로 배정 받고,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자유학기제 특별 수업을 받고 있는 현실과 괴리감이 느껴지는 정책이다.

자유학기제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하면 교사와 학생은 높고 학부모의 만족도는 현저히 떨어진다. 자유학기제는 교과 수업 시간을 1시간씩 줄여 교과 수업 대신 자유학기제 활동이나 특별수업을 한다. 교사는 시험을 안 보고 수행으로만 평가하니 학생의 학력수준이 나타나지 않아 수업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학생의 학력저하는 3년간 동일한 학생을 맡지 않으니 교사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평가 결과를 서술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몇 개의 평가 결과로 ctrl+c, ctrl+v 한다. 교사는 시험문제를 출제하지 않으면 많은 업무가 줄어든다. 시험 문제를 만들고, 시험지 포장하고, 시험 감독하고, 서술형 시험 채점하고, 평가 결과에 책임지는 등의 잡무가 없다. 교사의 업무가 현저히 줄어드니 교사의 만족도가 높은 게 당연하다.

학생은 어차피 과외나 학원 등의 사교육을 받으니 학교에서 수업하지 않고 놀게 해주니 좋아한다. 진로 탐색을 위한 제대로 된 인프라가 부족해 선배들의 시험 기간에 진로탐색을 다니는 것을 놀러 다닌다고 생각한다. 수도권과 지방이 진로 탐색을 위한 인프라가 차이 나는 현실에서 전국적으로 시행하는 자유학년제는 고소득층의 사교육 확대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 간의 학력격차마저 벌어지게 만든다.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정책만 입안하고 나머지는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고 책임 전가만 하는 교육부는 현재의 부작용에 대해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못한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에 1학년 교사들은 학생이 체험할 장소나 인물을 섭외하느라 공을 들이지만 진로탐색과 연관 없는 활동이 더 많다. 현재 중학생이 하는 활동을 보면 국회의사당 구경, 대학교 탐방, 연극·박물관·미술관 관람 등의 활동이 주를 이룬다. 직업체험은 애견미용사, 바리스타, 은행원, 경찰, 군인, 공무원, 소방관, 요리사, 마술사 등을 초빙해 이야기를 듣거나 영화나 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써내는 활동을 한다. 직업체험도 정원이 차면 가위바위보해서 원치 않는 직업을 체험하고 친한 친구끼리 경쟁이 없는 직업체험을 신청해 놀다 오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 진로탐색 활동이 오전에 끝나니 오후에는 PC방으로 몰려가 학부모의 원성이 자자하다.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무언가 한다고 하지만 그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른다. 그저 학생들이 써내는 설문지 결과에 의존해 자화자찬하기 바쁘다.

서울에만 383개의 중학교가 있다. 이 많은 학교의 중1학년이 겹치지 않게 진로탐색 할 마땅한 공간이 있을 리 없다. 몇 학교만 시범학교 선정해서 자유학기제를 시행할 때는 예산도 많이 배정되고 활동할 곳도 많았지만 전면 시행하면서 수많은 학생이 쏟아져 나올 것에 대한 대비는 부족해 혼란을 자초했다. 자유학기제 취지를 제대로 살리려면 진로탐색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장소와 활동을 교육부에서 준비해야 한다. 진로에 별 도움 되지 않는 체험이나 영상을 보고 보고서만 쓰라고 하니 학생은 힘들어하고 효과도 없다.

자유학기제 탓에 시험이 없으니 모든 평가는 수행평가가 대신한다. 학생들에게 자유학기제는 ‘1년 동안 시험이 없으니 놀아도 된다’는 정도의 의식밖에 없다.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정말 자유롭게 보낸 후 2학년에 올라가면 성적은 바닥이 된다. 1년 동안 놀던 아이들이 2학년이 되면 진로를 찾고 공부에 집중할 것이란 것은 이상에 불과하다. 공부의 부담에서 벗어나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도록 하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고입, 대입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무조건 공부의 부담만 줄이는 것이 좋은 것인지 돌아봐야 한다. 자유학기제로 소득 격차 대비 학력 격차도 더 심하게 벌어진다. 금수저 아이들은 과외나 학원에서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지만 흙수저 아이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더 놀게 만든다. 자유학기제가 취지대로 운영되면 반대할 학부모가 없다. 뚜렷한 목표, 진로탐색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은 방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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