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매년 3월이면 학교별로 학부모 총회, 상담 주간, 공개 수업 등을 줄줄이 개최한다. 또한 녹색어머니회, 어머니 폴리스(학교 방범 활동), 독서 지도단, 급식 모니터링단, 학부모 임원, 학교폭력대책위원회 등 다양한 명칭으로 학교 일에 참여할 학부모를 모집해 학부모의 부담이 크다. 초등학교, 중학교 저학년 학부모라면 학교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어 학부모에게 3월은 가장 힘든 달로 통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초등학교 어머니 동원 금지’라는 청원 글이 올라 와 1만 5천여명이 동의했다. 청원자는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후 녹색어머니회, 어머니 폴리스, 어머니 도서위원, 책읽어주는 북맘 등 엄마가 참여하는 학교 활동이 많다는 걸 알았다. 취지는 좋지만 반별로 인원이 할당되어 반강제적이다. 모임이 대부분 ‘어머니’ ‘맘’ 등이 들어가 여성 참여만 강조해 교육이 엄마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을 심어 준다. 초등학교에서 어머니 동원을 금지하고 전문가를 고용하도록 바꿔 달라”고 제안했다.

학교 앞 교통지도를 담당하는 녹색어머니회를 가장 부담스러운 임무로 꼽는다. 녹색어머니회는 내 자녀와 자녀 친구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1년에 몇 차례 교통 지도를 한다. 녹색어머니회는 누구를 위한 제도가 아니다. 나의 자녀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해 부모가 품앗이를 하는 활동이다. 내 교통 지도 덕분에 내 아이가 보호 받고, 다른 엄마의 도움 덕분에 내 아이가 보호 받는다. 순번에 맞춰 나갈 형편이 안 되는 워킹맘의 경우 일당을 주고 사람을 구해야 해서 힘든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자기 자식은 안전하게 학교 가기를 바라고, 자기는 1년에 단 하루도 교통지도하기 힘들다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다.

외국 학부모가 나오는 TV프로그램을 보면 자녀를 학교 앞까지 등교 시켜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사항이다. 워킹맘들이 맘 편하게 자녀를 등하교 시키고 출퇴근할 수 있는 사회적인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우리나라 실정과 부모의 역할이 법으로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학부모의 불만이 끝이 없다. 자녀를 위해 학교 일에 봉사하는 것을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훈련에 동원되듯이 ‘동원’ 된다고 표현하는 것은 학부모로서 지나친 감이 있다.

교내 행사에 학부모가 동원되면 교사도 편하지 않아 불만이 많다. 교육청에서 학교 행사에 학부모 참여를 독려하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막상 학부모를 배제하고 학교를 운영하면 “학부모의 의견을 무시하고 독불장군 식으로 학교를 운영한다”고 교육청과 학교에 학부모의 민원이 빗발친다.

교사도 녹색어머니회를 비롯해 학부모 지원자를 선발하느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교육청에서 지시하니 교장, 교감은 담임교사에게 독려하고, 담임교사는 학부모에게 통사정을 하는 체계로 이루어진다. 학급별 할당된 인원을 못 채운 담임은 1년 내내 부담을 느껴 학기 초에는 학부모회나 어머니회 등의 자원자를 뽑으려고 교사를 하는 건지, 학생을 지도하려고 교사를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교사가 등하교 교통 지도를 하면 학부모가 필요 없다”고 말하는 학부모도 있다. 교사는 이미 등교한 학생을 교실에서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 등교하는 학생을 일일이 인사하며 맞이하고 수업 시작 전에 교실에서 다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교통지도보다 더 중요하다. 모범운전자나 노인들에게 학교 교통지도를 맡기는 교육청도 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은 럭비공 같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 급한 상황에 대처 능력이 떨어지면 아이의 안전을 담보받기 힘들다.

중학교에서는 중간고사, 기말고사마다 학부모 시험 감독을 뽑느라 담임이 학부모에게 통사정을 한다. 학부모가 시험에 같이 들어가 1시간 동안 아무 일도 안하고 서 있다 나오는 감독이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아하다. 뒤편에 학부모용 의자가 비치돼 교사는 앞에서 감독하고 학부모는 뒤에 앉아 1시간 내내 휴대폰을 보거나 졸다가 나가기도 한다.

존경받는 교사가 없어진 상황에서 학부모의 역할이 법으로 명확히 규정돼야 학부모 동원도 없어질 것이다. 교사는 학교에선 부모다. 부모가 교사를 존중해야 아이들도 부모를 존경하는 아이로 자란다. 교육의 3주체인 학교, 학생, 학부모는 불가분의 관계다. 학부모란 주체가 빠진 학교와 학생만으로 이루어지는 교육은 큰 성과를 보기 힘들다. 학부모의 학교 행사 참여는 ‘동원’이라는 단어로 평가 절하 할 정도로 쓸모없는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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