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窓] 시진핑의 마오쩌둥 따라잡기
[동북아 窓] 시진핑의 마오쩌둥 따라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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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지난 11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3차 전체회의에서 국가주석 2연임 초과 금지조항을 폐지한 개헌안이 통과되면서 시진핑은 절대권력자였던 마오쩌둥 따라잡기에 집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덩샤오핑이 고안해 40년간 이어온 집단지도체제가 지금 중국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이 기존의 당장(黨章)에 명시된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3개 대표론(장쩌민이 주장한 사영기업가, 지식인, 노동자와 농민 등 3개 대표의 권익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론), 과학발전관(후진타오가 주장한 과학적으로 발전을 생각하자는 이론)’에 편입됐다. 시진핑 주석은 자기 이름이 들어간 사상을 마오쩌둥, 덩샤오핑에 이어 세 번째로 여기에 포함시킨 것이다. 

마오쩌둥이 신중국 건국으로 중화민족을 일어서게 했고,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으로 중국을 부유하게 만들었음으로, 시 주석은 ‘신시대 중국특색 사회주의 사상’으로 ‘중국의 꿈(中國夢)’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 첫 번째 단계는 공산당 창당 100주년(2021년)까지 전면적 샤오캉(小康, 모든 국민이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단계) 사회를 실현하고, 두 번째 단계로 중국 건국 100주년(2049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 국가건설을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진시황과 마오쩌둥을 들 수 있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제국을 건설했고, 마오쩌둥은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 실제로 중국의 탄생에 있어서 마오의 업적은 지대했다. 마오는 국민당군의 추적을 피해 장정을 통해 많은 청년들로 하여금 공산당에 가담하게 함으로써 결국 국공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또한 중국 건국 불과 2개월이 지난 1949년 12월 마오는 소련을 방문해 두 달 이상 호텔에 머물면서 스탈린을 설득해, 결국 국민당 정부와 맺은 구 중소조약을 폐기하고 신 중소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마오의 배짱과 뚝심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마오의 2가지 개혁정책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은 중국에 참담한 결과를 초래했었다. 농업정책을 공업정책으로 전환하려던 대약진운동은 엄청난 기근을 몰고 와 수천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대약진운동에 실패한 마오가 권력회복을 목적으로 일으킨 문화대혁명도 끔찍한 혼란만 가중시켜, 두 정책 모두 마오 말년의 과오로 중국역사에 영원히 남게 됐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관영매체들은 이번 헌법 개정이 당 중심의 영도체제 확립을 위한 것이라고 개헌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시 주석이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권력으로 장기집권을 꿈꾸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시 주석은 마오쩌둥식 통치체제를 답습해 신 마오시대를 꿈꾸기보다는 재임기간에 부패를 척결하고, 그가 명명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정책을 실현시켜 중국몽을 실현시키는 데 매진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시 주석은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장기집권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는 역사의 교훈을 새기며 훗날 역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어떤 방식이 최선인지를 생각해 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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