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한국기술금융협회 IT 전문위원

 

신기술을 시장에 최초로 소개한 인물이나 기업들은 그 기술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한 비용과 노력에 대한 대가를 얻고자, 특허 등과 같은 지식재산권을 행사하고, 특히 해당 신기술이 반영된 보다 새롭고 혁신적 제품을 시장에 출시해 선점효과를 통해 독점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한다.

이른바 선발자로 불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는 그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로 명성을 누리며, 관련 기술을 주도하고, 선도기술을 활용해 경쟁자들의 시장진입 이전에 브랜드 충성도를 확고히 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초기 투자비용의 과다 및 개발된 신제품의 실패 가능성을 고려해보면 자칫 해당 기술의 최초 개발이 언제나 화려한 꽃길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실제 시장에서 신제품 중 성공비율이 약 10%가량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즉 해당 기술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이를 받쳐주는 보완재적 기술의 연계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제품출시는 큰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보완재적 기술의 미비로 인한 선발자 실패 사례로 유명한 것은, 이전 스마트폰 관련 칼럼에서 언급한 노키아폰의 경우를 들 수 있다. 전 세계 2세대 휴대폰 시장을 석권했던 노키아의 핵심 파트인 휴대폰 사업부문이 2013년 MS(마이크로소프트)로 인수된 것은, 스마트폰 출현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던 처참한 결과로, IT분야 사업추진 시 참고해야 할 실패사례의 좋은 본보기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의 실패에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커다란 교훈이 숨어있다는 것을 일반인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 바로 연계기술, 즉 보완재적 기술의 한계를 간과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1990년대 핀란드 국가 경제의 3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거대 단일 기업이었던 노키아는, 스티브 잡스의 애플사가 2007년 혁명적인 ‘아이폰’을 시장에 출시하기 11년 전에, 이미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라는 오늘날의 스마트폰 기능을 갖춘 휴대폰을 출시한 바 있다. 접이식 모델 형태로 상단에는 디스플레이가, 하단에는 키보드 모양의 자판이 자리하고 있어 다소 둔탁한 형태이며, 무게도 많이 나가서 요즘의 스마트폰 형태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지만 성능에 있어서는 당시 기술 능력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탁월한 수준이었다. 전화는 물론 팩스 송수신이 가능하며, 인터넷 연결로 검색 기능과 이메일 수신도 가능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넷스케이프라는 인터넷 검색 엔진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이 1990년대 말이었으며, 실제 ISDN이나 ADSL과 같은 인터넷 접속 기술을 이용한 망 구축이 비로소 활성화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으니, 걸음마 수준에 불과한 당시의 우리나라 IT수준으로 볼 때 이 같은 기술은 상상하기 힘든 첨단복합기술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비록 카메라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지만, 이동하면서 통화가 가능하다는 점만 해도 큰 만족을 가져다주었던 당시에, 이 같은 부가적 기술이 탑재된 노키아폰은 가히 혁신적이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바로 본 첨단 휴대폰의 시장화를 위한 보완재가 당시의 통신망(네트워크) 환경에서는 제공되지 않았다. 즉 ‘노키아 9000 커뮤니케이터’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통신망이 필요했는데, 당시 대부분의 통신망은 대용량 데이터 수용이 불가한 아날로그망이었다. 디지털통신망이 일부 도입되긴 했지만 극히 제한적이었고 원활한 네트워크 연결도 보장되지 않았다. 결국 노키아는 디지털통신망이라는 보완재의 중요성을 간과한 채, 단지 혁신적인 제품만 시장에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구매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러한 기대는 물거품이 되어 결국 애플사에 패배하는 것은 물론, 훗날 자사 사업의 심장으로 자부했던 휴대폰 사업 자체를 접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도전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선발자들에게 그에 따른 엄청난 대가가 지급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는 주변 환경이 충분히 고려돼야 하며 적절한 타이밍의 선택이 필요하며, 특히변화무쌍한 IT분야에서의 생존을 위해서는 선발자가 아닌 기민한 후발주자가 더 요구될 수도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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