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댄스그룹 ‘저스트 절크(Just jerk)’가 지금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고 있다. 방탄소년단에 이어 지구촌을 열광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 2월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도 공연, 화려한 퍼포먼스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들의 절도 있는 춤을 담은 유튜브 조회수는 현재 1200만이 넘었다고 한다. 

이들이 세계에 알려진 것은 지난해 아메리카 갓 탤런트 시즌 12였다. 이 프로에서 저스트 절크는 준준결승까지 올라가며 극찬을 받았다. 처음 보는 댄스로서 열정과 노력, 독창성에 심사위원들은 감탄을 연발했다. 관중들은 공연이 끝나자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이들이 공연 때마다 입은 의상이 특별히 눈에 띄었다. 의상은 희거나 붉은 색의 고대 복장이었다. 얼굴은 도깨비 가면으로 가리고 머리에는 검은 복두를 썼다. 두건에는 태극 문양, 등에는 곤룡포 무늬를 넣었다. 얼굴은 분을 바르고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이들은 고대 신라 화랑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말했다. 

저스트 절크처럼 실지 신라 화랑들은 화장을 했을까. 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진흥왕 때 고승 진자대사는 왕명으로 인재를 찾던 중 가야 땅인 웅천(熊川) 수원사에서 미시랑이라는 미소년을 만난다. 그런데 소년은 화려하게 단장을 한 모습이었다. 

진자는 소년을 말에 태워 궁으로 데리고 갔다. 진흥왕은 소년을 반갑게 맞아들이고 낭도의 우두머리로 삼았다. 이것이 화랑의 시초라고 기록된다. 
화랑들은 얼굴도 준수했다. 지금의 아이돌 스타를 방불한 수려한 얼굴과 강인한 신체를 지녀야 했다. 화랑세기를 보면 진흥왕대 궁주 미실은 여러

화랑들을 연인으로 삼았다고 기록 된다. 첫 사랑은 사다함이고 그 후 설원랑을 비롯, 여러 화랑들과 염문을 뿌렸다. 화랑 김유신은 낮은 신분의 천관녀를 사랑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고 여인의 집으로 데리고 간 애마(愛馬)의 목을 쳤다는 설화가 있다. 결심과 단호함이 찬 얼음과 같았다. 

이들은 오계(五戒) 가운데 ‘싸움에 나가면 물러서지 않는다’는 ‘임전무퇴’를 생명처럼 중요시 했다. 바로 무사도의 실천이 가장 큰 덕목이었다. 낭도 출신으로 후에 지방 관원이 된 이들은 전쟁에 임해서는 성을 사수했으며 죽음을 두렵지 않게 생각했다. 

화랑 김흠운은 백제 접경인 조비천성(충북 영동 양산)을 지키다 전사했다. 부장이 후퇴할 것을 종용했으나 거절했다. 서라벌 사람들은 김흠운의 죽음을 애도하는 노래를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향가 양산가(陽山歌)다.  

신라무사들은 명예를 가장 소중히 생각하면서 국가를 위해 죽는 것을 가장 영예롭게 여겼다. 소재만필(昭齋謾筆)이란 책에는 “화랑의 가르침에서는 사람이 전쟁에서 죽으면 천당의 상석을 차지한다고 했다. 노인으로 죽으면 죽은 뒤의 영혼도 노인이 되고, 소년으로 죽으면 죽은 뒤의 영혼도 소년이 된다고 했다. 그래서 화랑들은 소년의 몸으로 전쟁에 나가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신라는 화랑도를 길러 당나라 야욕을 물리치고 삼국 통일의 대업을 완수했다. 그 전쟁 선두에 임전무퇴의 화랑도가 있었다. 

화제의 댄스그룹 저스트 절크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이 공연이 미국에서 마지막이 될 것 같으며 단원들이 곧 헤어질 것 이라는 말을 했다. ‘대한민국 국민들과 국가를 위한 자랑스러운 군 복무 때문’이라고 했다. 이 방송이 많은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을 감동시켰다. 병역 의무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젊은이들, 이런 젊은이들이 있어 한국은 미래가 든든한 나라다.

저스트 절크 댄스그룹의 성공 이면엔 피눈물 나는 연습과 좌절하지 않는 강인한 정신이 있었다. 미국 무대에 서는 데 8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이 이룬 성공이었다. 어떤 고난에도 물러서지 않는 정신력은 화랑들의 DNA를 물려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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