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문재인 정부가 오늘 발의한 개헌안을 보면 기본권 주체인 국민을 ‘사람’으로 바꿨다. 또 ‘사람·노동·직접’ 세 단어가 핵심 키워드라고 한다. 사람으로 바꾼 이유에 대한 청와대 브레인들의 설명이 아직은 와 닿지 않는다.  

인류가 ‘사람’을 논의하기 시작한 것은 역사가 깊다. 2500년 전 공자는 이미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인(仁)을 주창했다. ‘인’은 어질다는 뜻이나 글자 안에 큰 뜻이 숨겨져 있다. 바로 사람(人)과 하늘(天.–)과 땅(地._)을 붙여 이루어진 글자다. 사람이 하늘과 땅처럼 존귀하다는 뜻이다. 

주역에서도 천. 지. 인(天地人)을 삼재(三才)로 삼았으며 이를 삼신의 현현(顯現)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 역사서에 단군은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다)’ 사상과 홍익인간을 국가 경영의 근본이념으로 삼았음이 나타난다.  

그런데 7천년 전인 동이족의 선조라 할 수 있는 우하량 홍산문화 석기 가운데는 이미 한자의 원류 ‘인(人)’이라는 글자가 찾아지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 놓은 바위그림에서도 고졸한 인(人)자와 하늘과 땅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서양에서는 2천년 전 그리스도가 제자의 발을 씻어주는 실천을 통해 인간존중의 모범을 보였다. 기록을 보면 휴머니즘(humanism)이란 영어를 처음 쓴 이는 예수와 동시대를 살았던 로마 철학자 키케르(cicer)였다고 한다. 그리스도 정신은 결국 제국 로마를 굴복시켰으며 범죄와 고통의 나락에 빠지는 인류를 해방시켰다. 

불가에서는 사람존중 사상을 ‘자비(慈悲)’라고 표현했다. 신라 원효스님은 실천자비로 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린 침울한 서라벌을 구했다. 스님이 아내인 요석공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서민들이 사는 저자거리로 가출했다. 스님이 찾은 곳은 백정들이 사는 시장통이었다. 그는 광대들의 도구인 큰 박으로 만든 악기를 가지고 ‘무애(無碍)’라 이름 짓고 향가를 불렀다. 무애란 ‘일체의 거리낌이 없는 사람이 삶과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봉건 유교사회 이상은 공자의 가르침인 ‘인의(仁義)’ 실현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이상과 목표가 실현됐을까. 조선의 제도와 관습은 평등하지 않았으며 고귀한 신분은 세습되고 가난한 삶과 비천은 대물림됐다. 

조선시대 사람 존중을 외치다 목숨을 잃은 영웅은 교산((蛟山) 허균이다. 평등하지 못한 제도와 관습에 저항, 사람을 중시하자고 호소했다. 그는 인간적인 대접을 받지 못하고 사는 서얼출신과 기녀들 편에 서다 불행의 늪에 빠진 것이다. 허균의 개혁사상은 사후 조선왕조 4백여년 숨을 쉬지 못하다가 현대에 와서야 빛이 난다. 

영남의 존경 받는 학자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은 ‘인의’ 실현을 위해서는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천만권 경전과 서적들이 오로지 ‘인’을 떠들고 있으나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고 개탄했다. 회재는 스스로 구인록(求仁錄)을 짓고 자신이 거처하는 거실에 ‘구인당(求仁堂)’이란 현판을 걸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사람 존중과 거리가 먼 악습과 편견, 살벌한 분위기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허물어져만 가는 가족윤리, 미투에서 드러나는 위계와 강압에 의한 성폭력, 직장에서의 갑질, 노인 어린이 등 사회 약자층에 대한 겁박, 다국적 근로자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 등은 한국의 민낯이다. 적폐를 청산하면서 과거 정부 인사들에 대한 검찰의 잇단 구속영장 남발에 인도적 의지가 있기는 한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SNS상의 도가 넘는 공격도 사람존중에 위배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회재의 논리대로 실천이 문제이며 정략적이며 구두선에 그친다면 모래성이 된다. 대통령부터 제도 개선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필요하다. 사회지도층은 진정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며 존중하는 태도를 실천해야 된다. 그래야 사람이 살만한 대한민국이 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