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동지(同志)’라는 의미는 한자어 그대로 ‘뜻이 서로 같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함께하는 사람을 ‘동지’라 부르는데 정당에서 같은 당원 간에 호칭이 그 좋은 사례다. 정당에서는 당원들이 하나의 정강(政綱)과 당 이념에 따라 함께 지향하기 때문에 그렇게 불러온 것인바, 그만큼 당원 상호간 의기투합하고 신뢰가 있음을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념·행동에서 어긋나게 될 경우 정당을 탈당하면 동지라는 말이 사라지게 된다.      

바른미래당 소속의 비례대표 의원 가운데 당 정강과 이념을 따르지 않고 있는 이른바 ‘비례3인방’이 있다. 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이다. 이들은 국민의당이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반대하면서도 창당된 민주평화당으로 당적을 옮겨가지 아니한 의원들인데, 자진 탈당을 하게 되면 공직 선거법에 따라 국회의원 상실 사유가 되기 때문이다. 법적으로는 바른미래당 소속 의원이면서 마음은 민평당에 가 있으니 지난번 새로 합당된 바른미래당 원내교섭단체 등록에서도 필요한 연서·날인을 거부한 이념이 강하고 용기(?)있는 의원들이라 할 수 있다. 

국회법 33조 1항에서 “20인 이상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소속 의원이 교섭단체 참여를 거부할 경우 명확한 규정이 없다.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도록 돼 있는 교섭단체 의원 명부에서 거부하는 의원들의 연서·날인이 누락될 경우에는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바른미래당 교섭단체 등록에서 박주현·이상돈·장정숙 의원의 경우는 정당 사상 처음 맞게 된 사례다. 지금까지 개인의 능력보다 정당의 정강정책, 인기 등 영향으로 당선된 비례대표 의원들이 소속당에 반(反)하는 행위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은 사례가 없었고, 국회가 미처 상정(想定)해보지 못한 까닭으로 생겨난 입법불비(立法不備)라 하겠다. 어떠한 일이 발생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때 그때 정하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보다는 미리 규정으로 정해 두는 것이 논란의 여지를 없애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사무처에서는 ‘20명 이상의 의원을 둔 정당의 소속의원이 교섭단체 가입 여부를 임의로 선택할 수 없다’는 국회법 해설서에 근거해 바른미래당 비례대표 3명(박주현·이상돈·장정숙)이 속한 교섭단체도 바른미래당으로 봐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려 마무리 했던 것이다. 

바른미래당의 전신인 국민의당은 20대 총선 당시 비례대표 후보자 18명을 등록했고, 이 가운데 13명이 당선됐다. 국민의당 비례대표 순위에서 민평당을 따르겠노라 공언한 3인방 가운데  박주현 당시 최고위원 3번, 이상돈 공동선대위원장이 4번, 장정숙 전 서울시의원이 11번 순번을 받아 국회에 입성했다. 총선 당시 신생정당인 국민의당에서 안철수 대표 등이 몰고 온 녹색바람에 힘입어 더불어민주당과 같은 13명 비례대표 의원을 당선시켰으니 의외의 결과였다.     

현재 14석 지역구 의원이 있는 민평당에서는 자당에 동조하고 있는 3명 의원에 대해 바른미래당이 제명해줄 것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3인방이 사사건건 바른미래당과는 다른 입장을 발표하면서 소속정당에 찬물을 뿌리고 있으니 내심 제명해 국회의원 신분을 유지하겠다는 속셈일 것이다.

이에 대해 합당되기 직전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비례대표 의원은 개인 역량이라기보다 정당의 자산”이라 하면서 이들의 제명을 거부한 바 있고, 현재 바른미래당에서도 마찬가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비례대표 3인방이 바른미래당과 당 이념 등에서 맞지 않아 자진 탈당하게 될 경우 바른미래당(종전의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순위자 14~16번까지 후보들이 금배지를 달 수 있는데, 구태여 민평당 의석을 증가시켜줄 리가 만무한 일이다.  

상황이 이쯤 되니 비례3인방은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당에서 활동하면서 소속 정당에 반기를 들기 일쑤다. 민평당에서도 강수를 두고 있는바, 바른미래당 소속 이상돈 의원의 민평당 정책연구원장직 임명설도 나오고, 나머지 두 의원에게도 6.13지방선거 때 선대본부에서 중책을 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나돈다. 타당의 현역 의원이 다른 정당의 주요 당직을 맡는 꼴이니 이쯤 되면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전례가 없는 코믹한 일이 발생될지 모를 일이다.

자칫하면 우리 정당사에서 해괴한 일로 비쳐질 해프닝을 보면서 갑자기 생각나는 정치인이 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원장이다. 그는 비례대표만으로 5번 금배지를 단 진기록을 세웠고, 지난 20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돼 최고령 국회의원 기록을 세운 바 있다. 그 당시엔 국회의원 당선에만 눈이 멀어 셀프 공천했다는 말들이 돌았지만 임기 중에 국회의원직을 초개와 같이 던졌다. 그 자진 탈당 이유는 “민주당 내에서 더 이상 의원직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인바 당 정강정책 등에서 달라졌고, 마음이 맞지 않는다는 것이니 명분 있는 탈당이었다. 정치 도의와 정당정치를 훼손하면서까지 국회의원 자리를 유지하려고 바둥대는 정치인이 있는 마당에 노(老)정치인이 결행했던 당당한 정치적 소신이 한껏 돋보이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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