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정부가 주도하는 대통령 발의의 개헌안이 3차에 걸쳐 그 대강의 내용들이 국민에게 공개됐다. 헌법이 국가의 통치와 관련된 조직·작용의 기본원리를 담고,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므로 정치권뿐만 아니라 널리 일반국민들에게까지도 관심이 많다. 대통령 발의 개헌은 국무회의를 거쳐 발의하는 만큼 일부에서는 청와대가 공개한 내용 자체가 위헌이 아닌가 꼬투리를 달고 있지만 국무회의에서 소정의 절차가 이뤄져야 하는 만큼 별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개헌안을 보면, 지금까지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국정에서 문제가 됐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국회와 국무총리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으로 대통령 권한이 대폭 축소됐다. 선거연령을 헌법에서 18세로 하향 조정하면서 그 이하로 낮출 수 있도록 법률에 위임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또한 지방분권 강화 차원에서 자치행정권, 자치재정권을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조정된 것인데,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지방자치단체로 불리었으나 개헌안에서 ‘지방정부’라 명칭할 수 있어 그 호칭 하나만 봐도 지방분권 기조가 진일보됐고 강화된 것은 틀림이 없다. 

역대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지방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지방자치와 연관된 사항에 대한 실제 법제화나 적용면에서는 중앙 위주의 정치·행정을 펼쳐왔던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들은 지방을 중앙의 종속처럼 안이하게 생각한 나머지 지자체나 지방자치학자들이 요구하는 지방분권론을 무시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 관련 각종 제도를 마련하면서 ‘법률의 범위 안에서’라든가 중앙행정기관이 제정한 시행규칙에 지자체가 따르도록 함으로써 지방이 자율적으로 조직·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었고, 그로 인해 지방자치는 ‘빛 좋은 개살구’라는 말을 들어왔다.    

지자체가 행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도 국가위임사무는 두말할 것도 없거니와 심지어는 지방의 권한으로 할 수 있는 자체 업무조차 제한하는 내용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지자체는 자치권에 따라 통상적으로 자치행정권·자치입법권·자주재정권을 갖고 지방의 일에 관해 자율적으로 처리해야 하건만 그렇지 못했다. 예를 들어 자치행정권 가운데 조직·운영권이 법률에서 정한 기구의 총 수나 총정원제의 범위 안에서 이뤄졌으니 중앙의 예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자체의 조례나 규칙, 즉 자치입법권도 제한되기는 마찬가지다. 지방의회가 제정하는 조례의 경우에는 ‘법령의 범위 안에서 그 사무에 관하여’ 제정할 수 있는바, 이는 법령에 위법되지 않는 한 어떤 조례라도 만들 수 있는 일본의 경우와 다르다. 또 단체장이 제정하는 규칙에 있어서도 ‘법령이나 조례가 위임한 범위에서 그 권한에 속하는 사무에 관하여’ 허용될 수 있으니 지자체의 자치입법권은 상당히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중앙 위주의 제도로서는 자치발전과 주민복리와 관련된 내용들은 원천적으로 한계를 안고 있는 것이다.    

자주재정권이 열악한 상황에서 이번 대통령 발의 개헌안에서 현행 ‘조세법률주의’에 추가해 조례로 세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는 ‘지방세조례주의’는 지방분권을 강화하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세에 치중되고 있는 현행 조세 비중이 개선되지 않고서는 허울만 좋은 지방분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현재 우리나라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국세 대 지방세의 구조가 8대 2인 바, 이 구조가 5대 5 정도는 돼야 한다. 아무리 적더라도 6대 4의 비중이 돼야만이 지방분권을 강화한다는 대통령 발의 개헌안의 지방세조례주의가 합당할 것이다.

지방은 중앙의 종속이 아니라 상호 대등한 입장에서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 양대 축이다. 그럼에도 역대정부에서는 중앙 위주, 수도권 위주의 정치·행정을 펼쳐왔다. 잘 알다시피 우리 국토의 12%인 수도권 지역에 인구의 50%, 전국 20대 대학의 80%가 몰려 있는 자체가 비정상적이고, 정부정책의 실패가 아닐 수 없다. 중앙정부가 지방화시대라 하면서도 지역개발과 주민복리를 실행하는 원천이 되는 지자체의 자치행정권, 자치입법권, 자주재정권을 법률과 중앙행정기관의 규칙·훈령으로써 무력화시켜 온 ‘무늬만 지방자치시대’는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헌법 제1조에 ‘지방분권 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을 추가해 지방분권을 국가 운영의 기본방향으로 정하겠다고 청와대가 선보인 개헌안은 지방의 행정·입법·재정권한을 대폭 강화하고 있어 지금까지 중앙 위주 행정에 홀대받았던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이 내용들은 문재인 정부에서 헌법이 개정될 경우 대통령 발의 개헌안이든, 국회의원발의 개헌안이든 마땅히 포함돼야 할 지방분권 강화 내용인 것이다.

어쨌든 개헌이 되면 법적으로도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라 호칭할 수 있고, 또 지방분권이 강화된 진일보 지방시대를 맞을 것은 분명한데 진정한 ‘지방정부’에 걸맞는 여러 제도들이 잘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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