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설 명절을 지나고 나니 날씨가 많이 풀렸다. 요즘은 겨울철에 흔히 나타나던 삼한사온 현상이 사라진 지 이미 오래고, 대한(大寒)이 가장 춥다는 말도 맞지가 않는다. 입춘이 지난 2월 초순에 영하 10℃를 오르내리는 날씨가 계속되다보니 움츠러들었던 며칠간이다. 설이 갓 지났으니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문안과 덕담을 주고받으면서 설 연휴 동안 고향을 다녀오느라 힘들었으니 어디 가까운 온천이라도 찾아 피로를 말끔히 풀어야겠다는 말이 들리곤 한다.

설 연휴 피로를 온천욕으로 푼다는 것은 좋은 방법 중 하나다. 오랜만에 ‘온천’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과거 중앙정부에서 온천제도 업무를 관장해온 필자로서는 반가운 마음이 든다. 예전에는 계절이 바뀌어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늦가을부터 겨울 동안 사람들은 온천 가기를 좋아했다. 또 연휴가 되면 가족끼리 온천을 찾는 풍경들이 다반사였는데, 이제는 그곳보다는 해외여행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 지난 설 연휴기간에도 인천공항이 붐볐다는 내용이 실시간 뉴스를 탈 지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더라도 온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설 연휴기간에 쌓인 피로감을 가까운 유명 온천지를 찾아 풀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서 신문을 뒤지다보니 신문광고란에서 온천 이야기가 또 나왔다. ‘북한산에 청정 온천수가 콸콸!!’이라는 제하에서 그곳 온천에서는 100% 온천수만을 사용한다는 홍보문구다. 온천에 관심이 많은지라 계속 읽어보니 ‘청정암반 지하 972m에서 1일 765톤의 온천수가 대(大) 용출하고 있다’는 내용이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로서 온천홍보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니 교묘한 온천 홍보요, 하나마나한 내용임에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꽤나 흥미롭다.  

온천에서는 지하수를 섞어 사용할 수 없으니 당연히 100% 온천수를 사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온천시설에서는 냉탕, 세면대 등에서 지하수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온천수와 지하수 배관이 달라야 한다. 또 지하 972m에서 끌어올리는 물은 당연히 온천수이다. 지표상 기온을 섭씨 15도로 볼 때에 우리나라 토양 구조 하에서 지하 100m당 평균 2.5℃ 자연 증온되는 상태이니 600m 지하에 있는 물의 온도는 30℃에 달한다. 지표상으로 솟으면서 식지 않고 그대로 올라온다면 30℃ 온천수가 되는 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계산이라면 북한산온천처럼 지하 972m에 퍼 올리는 물은 당연히 청정 온천수다. 온천에 관한 기본상식을 갖고 있다면 일반적인 내용임에도 그럴듯하게 포장해 신문홍보하고 있으니 이용자를 현혹(?)시키는 것이다. 

이왕 온천이야기가 나왔으니 온천을 즐겨 찾는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서라도 한국온천행정 가운데 꼭 개선돼야 할 내용을 피력해본다. 바로 온천수량에 관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온천수의 온도 기준은 25℃다. 한여름 시냇물 온도가 그 정도로 온천수 기준이 낮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영국, 독일에서는 20℃ 이상, 미국에서는 21.1℃ 이상, 일본도 25℃ 이상이면 적합하기 때문에 온도 기준은 적절하다. 따라서 우리나라 온천법이 만들어진 1984년 이후 지하로부터 솟아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를 ‘온천’으로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온도 기준에 ‘수질’을 규정해 세계 각국에서는 이 두 가지를 온천의 기준으로 적용하고 있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996년부터 다른 나라에서 유례가 없는 ‘수량’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온천으로서 적격 조건을 갖추려면 온도, 수질과 함께 수량이 일정 기준을 넘어야 하는데, 1990년대 말 당시 우리 사회에서는 지금처럼 여가시간 이용을 위한 다른 특별한 방법이 없었던지라 국민들이 온천을 즐겨 찾았다. 특히 서울과 가까운 포천 등 신규개발 온천에서는 찾는 손님들이 많아 온천수가 부족해 지하수를 사용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정책적 고려에서 양수량 기준을 온천법령에 담아 부득이하게 제한했던 것으로 규제 만능의 행정이기도 했다.   

당시 필자는 온천제도·운영 책임자로서 전국 온천 점검을 통해 확인했던 바를 예로 들어본다. 유명 온천지인 경기도 포천지역 사례다. 하루에 지하로부터 뽑아내는 온천수가 200톤인 경우, 목욕에서 1톤당 5명 기준으로 삼는다고 하면 1일 최대 이용객은 1000명 정도다. 물탱크에 2~3일분을 저장해놓고 공급한다고 해도 하루 2~3천명 이용객이 적정하지만 주말에 1만여명 이용객이 몰려들었으니 일부 온천에서는 기사용한 물을 탱크에 담아 거른 뒤에 다시 온천수를 재사용하는 문제가 드러났다. 그래서 온천이 되려면 1일 적정양수량 300톤으로 추가 규제한 것인데 지금껏 공당 100톤인 경우, 고온양질이라도 온천이 아닌 것에는 문제가 따르고 있다.  

100톤이면 500명이 이용할 수 있는 양이다. 온천을 찾는 이용객들이 크게 줄어든 지금, 20년 전에 정했던 온천수 수량 규제를 풀어 소량이지만 양질의 온천을 보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우연히 주변에서 온천 이야기를 접하고서 잠시 옛 생각하며, 또 설 명절 쌓인 피로를 온천에서 풀자는 이야기를 듣고 보니 한겨울 열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이 새삼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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