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피랍탈북인권연대 대표,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 

 

만경봉 92호가 지난 2월 6일 대한민국 묵호항에 정박했다. 이미 일본에서 철퇴를 맞았고 러시아에서마저 퇴짜를 당한 대북제재대상 최고봉이 대한민국 영토를 마치 점령군처럼 진군해 들어온 형국이었다. 올림픽 현장에 숙소까지 마련해둔 터였는데 이것마저 뿌리친 북한의 파렴치한 행동에 속수무책으로 마냥 엎드린 꼴이 어쩌면 애처롭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만경봉 92호는 어떤 선박인가. 북한으로서는 꽤나 자랑거리인 이 배는, 1992년 북한 김일성의 80번째 생일을 맞아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즉, 조총련이 막대한 자금을 지원해 북한 청진 함북조선소연합기업소에서 제작한 선박이다.  

필자는 화제의 이 배를 가까이서 본 적이 있었다. 지난 2003년경으로 생각되는데 일본과 한국의 납북자 문제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경봉 92호가 정박해있는 니가타항구에 몰래 잠입(?)한 것이었다. 일본의 13살 어린 여학생이었던 요코타 메구미가 납치된 니가타 해변에서 북한의 만행을 규탄하려는 목적으로 그곳에 도착했을 때, 마침 만경봉 92호가 그곳에 정박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었다. 

몇몇의 의기충만한 일본기자들과 필자는 항구 바로 앞까지 쳐들어가, 한참을 올려다봐야 하는 만경봉호를 향해 손가락 욕을 비롯해 소박한 분풀이를 했던 것이 바로 그 기억이다. 

이런 만경봉호의 대한민국 입항은 크게 두 가지 포석을 두고 치밀하게 계산된 북한의 행동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전 세계가 공동의 노력으로 행동하고 있는 유엔결의에 대한 비웃음과 분열책동이다. 특히 미국을 향해 조롱의 메시지를 던졌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고르고 골라 파견하는 미녀응원단과 선수, 고위급 파견단조차 믿을 수 없다는 자기체제의 취약성을 반증한다고 하겠다. 여러 나라 선수들과 관광객들과의 교류 속에 만약에 하나라도 JSA의 오청성 병사처럼 들고 뛰는 날에는 무슨 망신일까. 김정은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고 그날로 모두 짐을 쌀 게 뻔할 뻔자다. 그래서 그들은 잘 포장된 감옥선(監獄船)을 보낸 셈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의 펜스 부통령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이 예고한 바와 같이 북한의 감옥에서 식물인간으로 돌아와 사망한 오토 웜비어 가족을 특별 초청해 함께 방한했다. 또한 평창으로 가기 전 북한정권에 탄압받았던 탈북인들을 만나 격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북한정권의 야만성을 폭로하고 북한노예주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이벤트가 이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그리고 방한의 메시지로는, 올림픽 개회식 테이프 커팅을 위해 단순히 리본을 자르러 가야 한다면 가지 않았을 것이라며, 이번 평창올림픽이 북한의 선전장이자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대북제재를 무력화하려는 북한의 계략에 강탈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과 북한은 과거 ‘조작의 대가’였으며 현재는 살인 정권임을 분명히 했다.

참으로 염려되는 것은, 촛불정부가 북한만 데려오면 만사가 다 이루어질 것이라는 착각이 순진한 생각이기를 바랬지만, 이제껏 진행되는 모습은 착각이 아니라 기획된 신념으로 비쳐지는 데 문제가 있다. 이후 버릇을 잘못들인 북한에 의해 야기되는 모든 비극에 촛불정부의 책임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드는 꼴이고, 그 신념이라는 것으로부터 더 큰 재앙을 불러오고 있음을 알려고도 하지 않으니, 바람 앞의 촛불신세를 누가 구원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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