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희윤 행복한통일로 대표/을지대 겸임교수 

 

이번에도 어김없이 북한은 눈앞에 닥친 경제·군사적 위기를 모면하려는 기만책으로 민족을 앞세우며 판문점에 나타났다. 남북 쌍방의 회담의 격과 같은 부차적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늘상 봐왔던 모습대로 북한대표단은 조성된 회담국면을 자신들의 프로파간다를 위한 기회의 장으로 십분 활용했다. 각종 회담에 관한한 일가견이 있는 북한으로서는 남한 당국자와의 회담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고, 일부 언론도 여기에 놀아나기는 마찬가지였다. 한가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예전의 북한당국자들에게서 봤던 여유로움은 사라지고 시종 심각한 표정의 북한대표단 모습은 그들이 현실로 처해있는 고뇌의 한 단면을 보는 듯했다.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의 평화회담 운운은 북한이 남한과 논할 가치와 이유가 없다는 것을 지난 70여년의 회담역사를 통해 누누이 언급해왔음에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인지, 아니면 진짜 무지의 발로인지 일부 언론과 당국자의 행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가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정말 쿨하게 유엔가입국으로 올림픽의 참가는 지극히 일반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회담에 임하면 의구심을 가진 국제사회의 시선에 오히려 당당할 텐데 말이다.

사실 회담의 묘미는 박근혜 정부에서 북한의 권력 3인방이 동시에 방한한 것이 가장 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수일간 지속된 회담으로 인해 입술이 부르터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으며, 북한 권력의 몇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통일전선부장 김양건은 회담 내내 여유있는 모습으로 회담장의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고, 황병서, 최룡해의 일거수일투족이 북한의 내심을 파악하는 데 진땀을 흘리게 했었다.  

회담 이후 김양건은 영원히 북한 땅에서 사라졌고, 급기야 북한군부의 최고실세 황병서마저 숙청되고 겨우 남은 것이 항일혁명의 후광을 안고 있는 최룡해뿐이어서 더욱 그때의 회담이 기억에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회담의 시작과 끝을 좌지우지 했을 김양건은 북한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회담의 결과물을 안고 북한으로 돌아가 아마도 큰 사달이 날 것이라는 게 당시의 중론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새벽에 천하의 김양건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니, 그것도 앞선 통전부장, 대남비서 출신의 김용순이 사망했던 그 길을 똑같이 걸었다는 것은 이 두 사람의 죽음이 모두 상식적인 죽임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후 북한은 갈지자(之) 걸음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싸움을 걸어왔다. 멱살잡이 수준을 넘어 거의 주먹이 오고 가야 할 지경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예전과 똑같은 수법으로 민족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회담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얼마 후면 미녀 응원단을 앞세워 평창올림픽을 휘저어놓을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여기에 민족이라는 롤러코스터를 탄 얼빠진 우리민족끼리 주의자들이 얼마나 날뛸지도 벌써부터 눈에 선하다. 현란하게 보이는 놀이기구 롤러코스터는 결국은 제자리로 돌아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기만책과 너무나 흡사하다. 온통 정신을 빼놓고 비명도 질렀지만 말이다.

북한의 반체제조직인 참지사(참다운 인권을 실현하는 사람들)는 이렇게 웅변한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김정일도 없었을 것이고, 300만의 대아사도 없었을 것이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오늘의 김정은 3대세습도 없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사는 이 땅의 암흑은 장본인이 김일성이다”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 김일성족(族)이 아닐까. 김일성족 아래에 신음하는 2천만 노예주민들이 우리의 민족이라면 민족이지, 김일성이 시작점이 된 세습독재세력은 우리 민족이 아님을 가슴깊이 새겨야 한다. 이 길만이 한민족이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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