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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문화칼럼] 여자 시인의 로망
뉴스천지  |  newscj@newscj.com
2017.09.17 17: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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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연인 한 사람만을 그리다가 죽은 부안기 매창, 당대 명사들과 교유한 그녀의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자나 깨나 임을 만나는 것이어서 그 간절함이 시에 녹아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명기 황진이는 뭇 남자들의 노리개가 되는 기방(妓房)을 떠나고 싶어 했다. 그녀가 송악산에 초막을 짓고 가난하게 사는 화담 서경덕을 찾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화담은 황진이를 기생으로 여기지 않고 문우(文友)로 예우했다. 그런 화담을 황진이는 가장 존경했다.

만년의 황진이는 더 좋은 시작(詩作)을 위해 금강산을 보고 싶어 했으며 진정한 풍류를 느끼고 싶어 했다. 황진의 마지막 연인은 소리를 잘했던 가인(歌人)이었다고 한다. 남복을 하고 새로운 애인과 함께 자연으로 떠난 황진이는 모처럼 행복했는지 모른다.

조선 중기 시인 이옥봉은 본래 양반가의 서녀였다. 옥봉도 평생 시를 지으며 살고 싶었다. 그녀는 명문집안 자제인 도승지 조원(趙瑗)을 흠모해 소실이 됐다. 그런데 조원은 옥봉을 소실로 받아들이면서 조건을 제시한다. 시를 짓지 말라는 것이었다. 옥봉은 부군과의 약속을 지키려했으나 어느 날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의 일을 관아에 호소하면서 시를 짓고 말았다. 이 시가 화근이 됐다. 남편이 사건에 연루되자 옥봉은 그만 버림을 받는다.

집에서 쫓겨난 옥봉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일설에는 뚝섬 근처에 방 한 칸을 얻어 살았다고 한다.얼마나 남편을 그리워했는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어/ 술로도 못 고치고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이불 속 눈물이야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과 같아/ 밤낮을 흘러도 그 뉘가 알아주나 -

옥봉의 이런 시들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이것이 조선을 찾은 중국 사신에 발견돼 연경에서 시집이 나왔다. 옥봉의 시는 명나라에서 더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옥봉이 종적을 감춘 후에 동해안 가에 한 여인의 시신이 떠올랐는데 온몸을 종이로 수백 겹 감고 노끈으로 묶은 것이었다. 종이에 적은 글은 모두 주옥같은 시였다. 그리고 ‘해동 조선국 승지 조원의 첩 이옥봉’이란 글이 적혀있었다.

시를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막은 유교사회에 대한 저항이었을까. 비운의 여류시인 옥봉은 이렇듯 시와 함께 생을 마감했다.

바람기 많은 남편에 분노해 한스런 삶을 살았던 허난설헌. 마음속엔 지아비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간절했던지 끝내는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 붉은 깁 너머로 등잔불 밝은데/ 꿈 깨보니 비단 이불 한 자락이 비었네/ 찬 서리 옥초롱엔 앵무만 속삭이고/ 뜰 앞에 우수수 서풍에 오동잎 지네 -

옛 시인들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초연하게 사는 것을 바랬다. 비를 가리고 바람을 막아주는 공간이면 자족했다. 오두막집이면 어떻고 보리밥에 나물이면 어떤가. 그윽한 자연 속에 살며 시를 쓰는 것을 제일 사랑했다. 무등산에 은거했던 조선 선조 때 시인 송순(宋純)의 시는 언제 들어도 가슴에 와 닿는다.

- 10년을 경영해 초가삼간 지어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 청풍 한 칸 맡겨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

서울의 한 유명 여류시인이 ‘내 로망이 미국시인 도로시 파커처럼 호텔에서 살다 죽는 것’이라고 하며 고급호텔을 향해 ‘방을 주면 선전해 주고 일년간을 살고 싶다’는 글을 SNS에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호텔 방을 창작의 산실로 삼는다고 더 훌륭한 시가 나올까.

필자가 아는 시인 가운데는 시골에서 욕심 없이 사는 이들이 많다. 땀으로 농사지은 곡식을 나누어 먹고, 밤이면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시낭송회도 연다. 이것이 바로 시인의 로망이 아닐까. 욕심 없는 삶 속에서 시를 쓰며 살아가는 여류시인의 모습이 진정한 아름다움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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