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평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옛 온천을 그린다
[아침평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옛 온천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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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라곤 논설실장/시인

 

겨울이 끝나가는 자락에서 생각나는 게 있으니 바로 온천이다. 올해 초 한국관광공사에서 이 겨울이 가기 전에 가족이나 지인과 함께 눈꽃이 핀 길을 걸어보고 따뜻한 온천욕으로 여유를 즐기는 소박한 온천테마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 기사를 읽고 나니 우리 산천에 골고루 있는 유명 온천과 함께 내가 다녀온 일본·중국 등지의 온천이 생각났다. 요즘처럼 세상 일이 복잡할 때는 정말이지 ‘하얀 눈길 걷고 따뜻한 온천에서 몸을 녹인다’는 그 홍보물처럼 온천이라도 다녀오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졌는데 끝내 이루지 못하고 이 겨울이 끝나고 있다.

사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큰돈 들이지 않고 온천을 다녀올 수 있을 만큼 우리 주변 가까이에는 온천이 많다. 과거 어렵게 살던 시절 온천은 손꼽히는 국민휴양지였다.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동래온천이나 백암온천, 유성온천 등 유명한 온천지로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했고, 또 시골 사람들도 계를 만들어 돈이 모아지면 단체로 온천욕 다녀오게 되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는데 세월이 흐른 이제 생각해보면 소박하게 살던 우리들의 옛 모습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온천법이 제정되기 전인 1980년만 하더라도 온천은 전국 14개에 불과해 사람들이 그곳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것도 행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온천세상으로 어디를 가도 온천이 있고 심지어 서울 도심에서도 온천이 있으니 귀한 대접을 받았던 온천이 1990년대에 들어서서 온천개발 붐으로 인해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아직도 옛적부터 명성이 높은 온천은 간간히 유명세 덕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더러 있지만 예전만 못하다. 그러니 온천경영자들과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주변의 관광테마를 엮어 온천 홍보에 열성이다. 앞서 관광공사의 온천테마나 동해안의 울진군이 홍보하는 ‘대게먹고 온천하는 힐링온천’ 캠페인도 그와 같은 맥락이다.

따뜻할 온(溫) 자에 샘 천(泉) 자 온천, 따뜻한 물을 지칭하는 온천에 대한 나의 애정은 깊다. 온천제도를 다루는 중앙기관에서 내가 오랫동안 온천행정에 관해 연구한지라 그 사정을 알고 있는 지인들이 간혹 우리나라 온천 가운데 어느 온천이 좋은가를 물어올 때가 있다. 그럴 적마다 나는 ‘온천은 어디라도 좋다’고 대답해준다. 오염되지 않은 지하수도 좋은데 하물며 수백 미터 깊이에서 용출되거나 퍼 올리는 물이 얼마나 깨끗하고 좋겠는가 말해주면 그들도 익히 아는 내용이지만 어쩔 수 없이 긍정하고 마는데 일단은 전문가의 경험담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씩 관광거리 또는 여가선용으로서 온천에 관한 기사가 나오면 눈여겨본다. 사실 온천법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있었던 유명 온천은 정말 수질과 자연환경들이 좋은 온천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경제수준이 높아지다보니 단순 온천욕보다는 갖가지 여가선용 방도와 관광지를 선호하게 돼 지금의 온천관광은 시들해졌다. 그 이유야 여러 가지 많겠지만 명성 높았던 유명 온천들의 퇴영(退嬰)에는 행정기관이나 경영자들의 과다한 욕심도 한몫했음을 부인할 바 없다. 온천수의 적정 양수량을 감안하지 않은 주변 이용시설들의 증가와 난개발이 주원인인 바, 온천수 부족에도 호텔 등 이용시설들은 과다했으니 그들 스스로 족쇄를 채운 셈이다.

온천개발을 두고 행정기관 또는 개발업자 간 견해에 오류들은 여전하다. 온천업무를 직접 관장하는 지방자치단체는 온천의 개발·관리·이용에 관한 다방면의 종합적 법률인지 능력에 한계가 따르고, 개발업자들은 법을 위반해 생떼 쓰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경기 안산을 지나는 지하철역 이름에 ‘안산 신길온천역’ 사례다. 이 길을 다니는 초행자나 역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 부근에 ‘신길온천이 있구나’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어디에도 온천은 없다. 온천 개발이 무산돼 주변이 개발되지 않은 공터뿐이니 지하철 4호선 신길온천역 풍경은 꽤나 황량하다.

이 일대에서 지난 1985년 어느 지질학자가 온천수를 발견한 이후, 온천개발을 염두에 두고 행정당국에서 2000년에 역을 개통하면서 ‘신길온천역’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온천개발이 흐지부지하다. 민원 끝에 지질학자 유족은 국민권익위로부터 최초 온천발견 신고자 지위를 보장받았지만 이는 온천법에 어긋나고 개발 조건에도 맞지 않는 것이다. 온천은 광업권과 달라서 온천발견자라 하더라도 개발 권리는 민법에 의해 땅 소유자가 가지게 되는 바, 결과적으로 땅이 없는 발견신고자는 적법한 개발행위를 할 수 없는 게 법의 취지다.

즉, 신길온천은 온천이 발견된 일대의 땅 소유자 안산시가 적격 개발자이나 시에서는 그 지역을 온천개발하지 않고 국민임대주택지로 지정했다. 그에 따라 유명무실한 ‘안산 신길온천역’ 이름은 변경돼야 마땅하지만 16년째 그대로인 채 행객들에게 혼돈을 주고 있다. 권익위, 안산시, 서울메트로 등이 보여주고 있는 뒷북행정의 표본이다. 그건 그렇고,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예전의 흰 눈 덮인 산촌의 온천 모습과 옛 추억을 그리자니 가슴 가득히 아쉬움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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