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치 상태는 광무산의 계곡을 사이에 두고 쉽게 결정이 나지 않았고 오랫동안 계속되고 있었다. 병사들은 긴 전쟁에 혐오감을 품기 시작했고 무기와 식량을 조달 맡은 후방의 사람들도 모두가 지친 상태였다.

항우가 1대 1로 단 둘이 승패를 가르자고 강요하는 데 반하여 유방은 항우의 죄상을 일일이 들추어내어 떠들었다.

“회왕의 명령을 받들어 진나라를 쓰러뜨리려고 나섰을 때에는 관중에 먼저 들어가는 자가 그곳의 왕이 되기로 약속돼 있었던 것이 아닌가. 네 놈은 그 약속을 버리고 나를 촉나라의 벽지에 내몰았다.

이것이 첫째의 죄다. 둘째로, 네 놈은 송의를 속임수로 잡아 죽인 뒤 그 자리를 빼앗았다. 셋째로, 네 놈은 조나라를 구한 뒤 귀국하여 회왕에게 보고하는 것이 순서이거늘 이를 어긴 채 제후의 군사를 협박하여 관중의 침입을 강행했다. 넷째로, 진나라의 영토를 차지하면 약탈 행위는 하지 않겠노라고 회왕에게 굳게 맹세해 놓고서도 네 놈은 진나라의 궁전을 불태우고 시황제의 능묘를 모독하고 재물을 약탈했다. 게다가 이미 항복한 자영마저 죽여 버렸다. 이것이 네 놈의 다섯 번째 죄다.

그리고 신안에서 진나라 백성 이십만명을 산 채로 땅속에 묻어 버렸다. 그리고 진나라 장수 장한을 왕위에 앉혔다. 이것이 여섯 번째 죄다. 일곱 번째, 네 놈은 봉읍을 나눌 당시 쓸 만한 땅은 모두 네 부하들에게만 주었다. 그리고 영주가 네 뜻을 거역하면 부하를 선동하여 반역을 도모하도록 하여 그 영주를 내쫓는 일만 일삼았다. 네 놈 자신이 팽성에서 의제를 내쫓고 그 자리를 빼앗아 양, 초 두 나라를 손아귀에 넣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죄다.

아홉 번째로, 네 놈은 강남에서 의제를 암살했다. 신하의 몸으로 감히 군주를 죽이고 또 항복한 자마저 죽이고 게다가 정치는 불공평하기 짝이 없고 스스로 약속한 일을 이행하지 않고 도대체 이따위 대역무도한 소행이 용납될 줄 아느냐! 이것이 네 죄의 열 번째니라.

나로 이를 것 같으면 의병을 일으켜서 제후들과 함께 극악무도한 역적놈을 처벌하려는 성스러운 입장이다. 그런 내가 어찌 네 놈의 도전을 받아야 한단 말이냐.

이놈 항우 듣거라! 네 놈을 때려눕힐 자는 내가 아니라 따로 있다. 감옥에 있는 무고한 죄수들을 내보내서 네 놈을 잡고야 말겠다.”

그 말에 항우는 약이 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숨겨 둔 석궁으로 유방을 겨냥하여 힘껏 쏘았다. 유방은 가슴에 상처를 입었으나 발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런 야만인이 어른의 발바닥을 겨누다니. 고얀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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