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나라 사자로 파견된 수하는 회남의 구강왕 경포를 비밀리에 만나 강대한 초나라 항우와 현재는 약하지만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고 제후들에게도 신뢰를 얻고 있는 한나라 유방과의 득과 실을 따져 끈기 있게 설득하고 있었다.

“물론 대왕께서 회남의 병력을 동원하신다고 해도 그 힘이 초나라를 패주시키는 데에 충분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대왕께서 초나라에 반기만 드시면 항우는 신경이 쓰이는 일입니다. 앞으로 몇 달 동안만 항왕을 괴롭혀 주신다면 그동안 한나라는 천하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원컨대 초나라보다 한왕의 뜻을 따르십시오. 저의 한왕께서는 대왕의 은의를 중히 여겨 천하를 얻은 뒤에는 대왕께 큰 나라 하나를 내리실 것입니다. 저의 한왕께서 저 같은 자를 대왕께 보내셔서 부질없는 말씀을 드리게 한 것도 이 점을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디 통촉하시기 바랍니다.”

“알겠소. 그 말에 따르겠소.”

회남의 구강왕 경포는 마침내 초나라에 반기를 들 것을 승낙했다. 그러나 이것은 밀약이어서 외부에 누설할 일이 못 되었다. 더구나 영빈관에는 초나라 왕의 사신이 머물면서 구원군을 빨리 보내라고 매일 같이 구강왕에게 독촉하고 있었다.

구강왕 경포에게 초나라에 반기 들 것을 승낙을 받은 수하는 그 자리에서 곧장 영빈관으로 달려가 초나라의 사신이 앉는 자리를 차지하고 이렇게 말했다.

“구강왕께서는 우리 한나라에 귀순하셨다. 이미 초나라의 명령은 통하지 않는다.”

그 소식을 들은 구강왕 경포는 깜짝 놀랐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초나라의 사신은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났다. 수하는 곧장 경포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일은 이미 결정됐습니다. 이대로 사신을 돌려보내시면 안 됩니다. 즉시 한나라에 협력하시는 결정을 내리십시오.”

“귀공의 말이 옳소. 이렇게 된 바에는 군사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공격하는 수밖에 없겠소.”

경포는 초나라의 사신을 죽이고 드디어 초나라 공격의 군사를 일으켰다.

그 소식을 들은 초나라 항우는 항성과 용저 두 장군에게 회남을 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항우는 한나라군이 있는 하읍을 계속 공격했다.

수개월 뒤 회남으로 출전한 용저는 경포의 군사를 공격해 깨뜨렸다. 경포는 군사를 거두어 한나라군이 있는 곳으로 물러갈까 하다가 무리하면 전체가 무너질 우려가 있다고 생각하고 군사는 그 자리에 둔 채 수하와 단둘이 사잇길로 빠져나가 한나라로 달려갔다.

경포가 찾아왔을 때 유방은 걸상에 걸터앉아 여자들에게 발을 씻기고 있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경포를 맞이했다. 경포는 몹시 화가 났다. 귀순한 것을 후회하고 이렇게 된 바엔 자살하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숙소에 들어가 보니 그곳의 시설이나 장식, 타고 다니는 수레, 식사 때 심부름하는 종, 이런 모든 것들이 한왕 유방과 똑같은 대우였다. 경포는 이 융숭한 대접에 금세 마음이 풀어져 버렸다.

그곳에 자리를 잡자 경포는 곧 부하를 구강에 보냈다. 그러나 초나라는 이미 항백에게 명령해 구강에 있는 경포의 군대를 공격하여 초나라에 편입시켰을 뿐만 아니라 경포의 아내와 자식들까지도 죽인 뒤였다. 경포가 보낸 부하는 경포의 친족과 그를 따르는 신하들을 모아 수천명의 부대를 만들어 가지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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