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나라 유방의 신하 진평은 계책을 써서 초나라 항왕의 신하들에게 황금 4만냥을 뿌리기 시작했다. 그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항왕과 신하들 사이에 이간질을 시켰다. 항왕에게 그 계책이 서서히 먹혀들었다. 항우는 심지어 군사인 범증까지도 의심을 했다. 범증이 건의한 형양성 공격 작전이 무시되었다. 화가 난 범증은 천하의 대세는 결정됐다며 고향 팽성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 등에 생긴 종기가 악화돼 죽고 말았다.

그 뒤 진평은 기회를 노려 여자로 위장한 2천명의 병사를 형양성의 동문 밖으로 출전시켜 초나라 군대를 공격했다. 초나라군이 이들을 상대하는 동안 그 틈을 이용해 포위돼 있던 한왕 유방은 밤에 서문으로 탈출했다. 유방은 일단 함곡관으로 피했다가 재차 병력을 모은 뒤 동쪽으로 나아갔다. 형양성을 빠져나간 유방은 함곡관을 지나 관중의 본거지로 돌아가자 군대를 다시 편성해 즉시 동쪽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때 원성이 건의를 했다.

“형양을 중심으로 한 공방전은 이미 수년에 걸쳤고 그동안 우리나라는 줄곧 고전을 치렀습니다. 이번에는 전략을 바꾸어 남쪽의 무한으로부터 출발하십시오. 그러면 항우는 군사를 급히 남쪽으로 돌릴 것입니다. 그러면 대왕께서는 무한에서 수비를 튼튼히 하여 초나라군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것입니다. 그동안 형양과 성고 지방에 있는 우리 잔류 군대는 휴식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일방 한신에게 명령해 하북과 조나라를 제압하게 하시고 연나라와 제나라에는 동맹을 맺으십시오. 그런 다음에 다시 형양의 공격에 착수해도 늦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초나라의 방위선이 넓어져서 힘을 분산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충분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에 이번에야말로 초나라군을 무찌를 수 있습니다.”

한왕 유방은 원성의 계략을 따르기로 하고 군사를 남쪽의 완과 섭으로 진격시켜 경포와 협력해 병력 증강을 도모했다.

항우는 과연 군사를 이끌고 남쪽으로 왔다. 한왕 쪽에서는 싸움을 걸지 않고 오직 수비 작전으로만 나갔다.

이무렵 역시 항우에게 반기를 들었던 팽월의 군사가 수수를 건너 팽성 동쪽의 하비에 거점을 둔 항성(항우 아들)과 설공의 초나라군을 공격해 큰 타격을 입혔다. 항우는 급히 완에서 철수하여 팽월을 치기 위해 동쪽으로 나아갔다. 한왕 유방도 군사를 움직여 북쪽의 성고에 진주시켰다.

팽월을 물리친 항우는 유방이 성고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듣고 급히 군사를 돌려 서쪽의 형양을 함락시키고 어사대부 주가와 종공을 죽이고 한공을 포로로 잡고 여세를 몰아 성고를 포위했다.

성고가 포위되자 유방은 당황하여 도망쳤다. 등공과 단둘이 성고성의 옥문을 빠져나가 북쪽으로 수레를 몰았다. 황하를 건너서 조나라의 수무까지 달아나고 나서야 비로소 휴식을 취했다. 다음 날 한왕의 사자임을 사칭하고 그들은 장이와 한신이 지키고 있는 성으로 들어가 군사를 빼앗아 버렸다.

한왕 유방이 형양에 포진했을 당시 그는 장이와 한신에게 위나라와 조나라 공격을 명령한 바 있었다. 그 결과 식량과 병력의 조달이 손쉬워지는 한나라군은 초나라의 추격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 공로에 보답하여 장이를 조왕에 봉했고 한신은 장이를 돕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이 아무래도 불안하기만 하여 아예 조나라에 독립 왕국을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한왕 유방으로서는 항우에게 쫓겨 도망쳐 온 마당에 그 두 사람을 복종케 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술수를 써 한왕의 사자라고 속이고 성안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유방은 두 사람의 침실에 침입하여 인수를 빼앗는 동시에 여러 장수들을 불러 하루아침에 인사이동을 해치운 것이었다. 장이와 한신의 군사를 이런 수법으로 손에 넣은 것이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