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제왕 시를 즉묵에서 죽인 전영은 계속해서 서쪽으로 나아가 제북왕 전안도 죽이고 3제(제, 제북, 요동)를 손에 넣었다. 조나라 장군 진여는 전영에게서 제나라 군사를 빌려 상산왕을 공격하여 무찌르고 대에서 조왕 헐을 모셔와 다시 왕위에 앉혔다. 

한나라 2년 유방은 새왕 사마흔, 책왕 동예, 하남왕 신양을 항복시키고 한(韓)왕 정창마저 한신을 보내 굴복시켰다. 정창의 후임으로는 한나라 태위 신을 세워 한(韓)왕이라 했다. 

그런 다음 적군의 장군으로서 병력 1만명을 거느리고 항복한 자에게는 만후호로 봉했다. 

유방은 북쪽 하상의 요새를 수복하는 일방 진나라 황실의 광대한 방목지였던 이궁, 원지 등을 모두 농토로 개방했다. 

해가 바뀌어 한(漢)왕 유방 3년 정월 한나라는 옹왕의 아우 장평을 체포했다. 그리고 죄수들에 대한 대사령을 실시했다. 

유방은 함곡관을 출발해 섬을 찾아가 그곳 유력자들의 지지를 다짐 받았다. 조왕 장이가 한나라로 망명해 오자 유방은 그를 환영했다. 

2월에 접어들자 한왕 유방은 진나라 사직을 없애고 한(漢)나라의 사직을 세웠다. 

이듬해인 3년 한왕 유방은 임진에서 황하를 건넜다. 그러자 위왕 표가 전군을 이끌고 항복해 왔다. 이어서 하내(황하 이북)를 공격해 은왕을 사로잡고 그곳을 하내군으로 하였다. 

유방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평음을 거쳐 황하를 건너간 유방의 군사들은 낙양으로 들어갔다. 그때 신성의 삼로인 동공이 유방을 만나 초나라 의제의 죽음에 대해 호소했다. 동공의 말을 들은 한왕 유방은 옷을 벗고 통곡하며 의제를 추도하기 위해서 삼일장을 거행한 뒤 제후들에게 격문을 돌렸다. 

“의제를 옹립하고 그를 섬길 것을 천하가 일치된 의견으로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우는 의제를 강남으로 내쫓고 목숨을 빼앗았다. 항우의 행위는 포학하기 이를 데 없다. 나 한(漢)왕 유방은 제후들에게 부탁하노니 모두가 흰 상복을 입도록 하라. 나 한왕은 관내의 전 병력을 동원하고 하남, 하동, 하내의 장병들을 손에 넣은 뒤 장강과 한수를 따라 대군을 남쪽으로 내려 보낼 것이다. 이 일은 제후, 제왕의 여망에 부응해 의제를 죽인 초나라 항우를 벌하기 위함이다.”

한(漢)나라 3년 봄 유방은 다섯 제후의 군사들을 총 동원한 56만명의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 공격의 길에 올랐다. 

그 소식을 접한 항우도 제나라의 공격을 부하 장수에게 맡기고 자신은 정병 3만명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노나라에서 호릉으로 나아갔다. 

4월 한나라 유방은 초나라의 수도 팽성에 쳐들어갔다. 그들은 성을 점령하고 재물과 미녀들을 빼앗은 뒤에 매일 같이 축하연을 베풀며 승리감에 도취돼 있었다. 적의 허점을 파악한 항우는 군사를 서쪽으로 옮겨 소를 거점으로 삼아 한나라군을 새벽에 공격했다. 

성은 깨어져 버렸고 싸움은 오후가 되자 이미 승세가 결정돼 한나라군은 단숨에 무너지고 말았다. 
한나라 군사들은 도망가다가 곡수와 사수에 빠져 죽은 자가 10만명이 넘었다. 나머지 한나라군은 남쪽의 산 속으로 도망쳐 들어갔는데 그들마저도 초나라군의 추격을 받아 영벽의 동쪽 수수 부근에서 갇힌 꼴이 됐다. 더구나 강가로 몰려간 자들도 초나라 군에게 공격당해 엄청난 전사자를 내었다. 10만여명의 군사들이 한꺼번에 강으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강물의 흐름이 잠시 멎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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