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한왕 유방은 신하 원성의 건의를 받아들여 군사작전을 펼쳤지만 초왕 항우의 반격을 받아 되레 성고성에서 포위를 당했다. 유방은 다급한 나머지 등공과 단둘이서만 성고성 옥문을 빠져나가 도망쳐 버렸다.

두 사람은 장이와 한신이 주둔하고 있는 조나라의 군영 앞에서 한왕의 사자로 왔다고 속이고 침실로 들어갔다. 자고 있는 장이와 한신의 장군 인수를 빼앗고 이튿날 장수들을 불러 즉시 인사이동을 해버렸다.

유방이 형양에 포진했을 당시 장이와 한신에게 조나라와 위나라 공격을 명령한 바 있었다. 두 사람은 초나라와 한나라의 싸움이 아무래도 불안하여 아예 조나라에 독립왕국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장이와 한신의 인수를 빼앗은 유방은 장이에게 명령하여 병력 보충을 추진케 했고 한신에게는 동쪽으로 나아가 제나라를 치게 했다.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치는 수개월을 끌고 있었다.

그 무렵 팽월의 군사가 양나라에서 맹렬한 게릴라 작전을 펼쳐 초나라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초항왕은 위협을 느꼈다. 초조해진 그는 높은 누대를 만들어 그 위에 볼모로 잡힌 태공(유방의 아버지)을 올려놓고 한왕에게 외쳤다.

“당장 항복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의 아비를 가마솥에 삶아 버릴 것이다.”

그러자 한왕이 응수했다.

“좋도록 하게. 자네와 나는 회왕을 섬길 때 의형제를 맺었다. 그렇다면 내 아버지는 자네에게도 아버지가 될 텐데 그런 아버지를 가마솥에 삶는 데야 난들 할 말이 있겠나. 삶은 국물이나 한 그릇 보내주면 좋겠다.”

그 말을 들은 항우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서 당장 태공을 처형하려고 했다. 이때 항백이 나섰다.

“장차 천하가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는 지금 태공을 죽여 봤자 별 소득이 없을 것이오. 아무튼 천하 제패의 꿈을 품은 유방이니까 가족의 일 따위는 안중에 없을 것이오. 그를 처치해 봤자 오히려 소문만 나쁘게 퍼질 뿐이오.”

항우는 단념할 수밖에 없었다.

양 진영의 대치 사태는 계속됐고 싸움의 승패는 쉽게 결정되지 않았다. 병사들은 계속되는 전쟁에 차츰 혐오감을 품기 시작했고 무기와 식량 조달을 맡은 후방의 사람들도 이제는 몹시 지쳐 있었다. 항우는 유방에게 제의를 했다.

“이 몇 해 동안 천하가 시끄러웠던 것은 모두 우리 두 사람 때문이오. 아예 우리 둘이서 결정지어 버리는 것이 어떻겠소? 우리 때문에 죄 없는 백성들을 괴롭힐 수는 없는 일이오.”

그 말에 한왕 유방은 능청스럽게 답했다. “나는 머리로 싸울지언정 힘으로는 싸우지 않는다.”

그 말을 들은 항우는 힘센 장사를 내세워 적의 앞에 나아가서 싸움을 걸게 했다. 유방 쪽에서는 누번족 출신으로 활을 잘 쏘는 병사를 내세웠다. 이 병사는 항우 측의 장사가 나오는 족족 모조리 활로 쏴서 죽여 버렸다.

항우는 몹시 화가 났다. 손수 갑옷을 걸치고 극(끝이 갈라진 창)을 잡고 뛰쳐나갔다. 한나라군의 사수가 이번에도 활을 쏘려고 했다. 항우는 두 눈을 부릅뜨고 그에게 호통을 쳤다. 사수는 그만 손이 떨려서 도저히 겨냥할 수가 없었다. 그는 요새로 도망쳐 들어가 두 번 다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유방은 잠시 뒤에 그 일을 보고 받았다. 항우 자신이 직접 도전자로 나섰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리둥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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