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항우는 말에서 내려 부하들에게 말을 버리라고 명령했다.

그런 다음 항우는 남은 부하들과 뒤쫓아 온 한나라군을 공격했다. 항우가 혼자서 죽인 한나라 병사들만 해도 수백명에 이르렀다. 그 자신도 십여 군데에 부상을 입었다.

그는 싸우다가 한 곳을 보니 기병 장수 여마동이 서 있었다. 그를 보고 소리쳤다.

“그대는 내 옛 친구가 아닌가?”

여마동은 항우와 마주치기가 거북하여 옆에 있는 왕예에게 저게 항우라고 일렀다.

“한왕 유방이 내 목에 큰 상금을 걸어 나를 잡으면 만호후에 봉한다고 약속했다더군. 이왕 죽을 바에야 옛 친구인 자네에게 공을 세워 주겠네.”

항우는 그 말과 함께 여마동 앞에서 칼을 빼어 스스로 자기 목을 쳤다. 왕예가 재빨리 달려와 그 목을 움켜쥐었다. 이를 본 다른 기병들도 밀어닥쳐 항우의 시체를 놓고 쟁탈전을 벌였다. 그 북새통에 수십명이 깔려 죽었다. 결국 양희, 여마동, 여승, 양무 네 사람이 항우의 사지를 하나씩 손에 넣었다. 뒤에 왕예가 차지한 목과 맞춰 보니 틀림없는 항우였다. 이것이 훗날 초나라의 영토가 다섯으로 나누어지는 원인이 됐다. 즉, 여마동은 중수후, 왕예는 두연후, 양희는 적천후, 양무는 오방후, 여승은 열양후로 각기 봉해졌다.

항우의 장렬한 최후 모습에서 그의 생애를 돌이켜보며 사마천은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옛날 순 임금의 눈에는 눈동자가 두 개씩 있었다. 언젠가 나는 이런 이야기를 주생(사마천 시대의 유학자)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항우의 눈동자도 둘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다면 그는 순임금의 자손이란 말인가. 그가 세상에 태어나 떨친 세력이 그만큼 격렬했던 것도 어쩌면 이유 있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진나라가 천하의 다스림에 실패하여 진승이 반란을 일으키자 각지에서 호걸들이 일어나 패권을 다투었다. 그런 사례를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항우의 경우 이렇다 할 기반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시대의 흐름에 편승하여 농민 봉기의 와중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던 것인데 3년 후에는 연, 조, 한, 위, 제의 다섯 제후들을 거느리고 마침내 진나라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그리하여 천하를 분할, 제후를 봉하고 자신은 그 우두머리로서 천하를 호령하는 패왕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뜻을 완성하지는 못했다손 치더라도 과거 수백년에 걸쳐 이만한 인물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항우에게도 치명적인 실패는 있었다. 고향인 초나라를 그리워한 나머지 관중의 경영을 잊었던 점, 의제를 내쫓고 제위를 빼앗은 일, 자기에게 거역하는 제후들을 용서할 줄 몰랐다는 점, 이런 것들이다.

또한 자기 과신에 사로잡혀 모든 일을 자기 한 사람의 지혜에서만 처리했고 옛 교훈으로부터는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패왕이란 힘에 의하여 천하를 정복하는 자라고 믿고 그 스스로 그와 같이 행동했다. 그 결과 5년 뒤에는 나라를 멸망으로 이끌었고 자신도 동성에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고 깨달을 줄 몰랐다. 하늘이 자신을 버렸기 때문이지 전술이 나빴기 때문은 아니라고 죽는 순간까지도 그렇게만 생각하였으니 이 어찌 큰 잘못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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