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항우는 초나라에 귀순해 온 진나라 병사 20만명을 신안 땅 남쪽에 생매장을 해 버렸다. 그런 다음 진나라로 진격해 함곡관에 이르렀으나 유방의 군사들에게 길이 막혔다. 유방이 벌써 함양을 함락시켰다는 보고를 받고 펄펄 뛰며 유방을 죽일 것을 결심하고 총공격 준비를 하고 있었다. 

유방의 수하에 있는 장량에게 항우의 숙부 항백이 밤에 몰래 찾아와서 빨리 도망치라고 충고를 했다. 장량은 패공 유방과 의논하고 항백과 인척 관계의 서약을 하고 그에게 항우를 배신할 의사는 추후도 없었다며 그 뜻을 잘 전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항백은 그 날 밤으로 초나라 진영으로 돌아가 패공의 말을 그대로 항우에게 전달하고는 다시 덧붙여 일렀다.  

“패공이 먼저 관중을 공격하여 접수하지 않았더라면 귀공이 관중에 들어가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오. 큰 공을 세운 그를 공격한다는 것은 옳지 못한 일. 그를 마땅히 후대하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생각하오.”

항우는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튿날 아침 패공은 백여기의 군사들을 이끌고 홍문으로 항우를 찾아갔다. 그는 항우에게 정중히 사죄했다.

“항왕과 저는 다 같이 진나라를 무찌르는 일에 협력하여 항왕께서는 황하의 북쪽을, 저는 남쪽을 공격하면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도 제가 먼저 관중에 도착하여 진나라군을 무너뜨렸고 또한 이렇게 항왕을 뵙게 되니 기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부 경솔한 자들의 비방에 의하여 항왕과 저와의 사이에 흠이 생기려는 모양입니다. 이 일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일은 귀공의 좌사마로 있는 조무상이 저질렀소. 그런 소리만 들려오지 않았더라면 내가 어찌 귀공을 의심했겠소.”   

그렇게 말한 항우는 유방을 위해 주연을 베풀었다. 항우와 항백이 동쪽을 바라보고 윗자리에 앉았고 범증이 남쪽을 바라보고 모두 주인의 자리에 앉았다. 패공은 북쪽을 향하여 아랫자리에 앉았다. 장량은 서쪽을 향해 자리를 잡았다. 

주연이 진행되는 동안 유방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범증은 항우에게 눈짓하며 허리에 찬 옥륜을 쳐들어 죽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나 그 신호를 세 번이나 되풀이 했으나 항우는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범증은 그 자리에서 빠져 나가 항장을 불렀다.

“우리 왕께서는 인정이 많으셔서 손수 처치하실 수 없을 것 같소. 당신이 대신해서 해 주어야겠소. 먼저 패공의 장수를 비는 건배를 하고 그 다음은 검무를 추는 건배를 하고 검무를 시작하면 되오. 검무를 추면서 패공의 옆으로 다가가서 그를 죽여 버리는 거야, 알겠소? 만일 실패하는 날에는 장차 우리는 모두 패공의 포로가 되고 말테니까.” 

범증의 지시로 항장은 연회석으로 들어와 우선 패공에게 술을 올리고 이어 항우에게 말했다. 

“모처럼 왕께서 패공과 만난 뜻 깊은 자리인데 진중이고 보니 여흥을 돋울 준비가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서서 칼춤을 출까 합니다.”

그 말에 항우가 허락을 했다. 

항장은 칼을 뽑아 들고 연회석에서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항장의 행동에 살기가 흐르는 것을 느낀 항백이 칼을 뽑아 들고 항장과 마주서서 검무를 추었다. 항백이 패공을 감싸고 틈을 주지 않자 항장은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사태를 파악한 장량은 자리에서 빠져나와 군문 밖에 있는 번쾌를 찾았다. 번쾌도 몹시 궁금해 하던 참이라 장량에게 대뜸 물었다. 

“분위기가 어찌되어 가오?”

“큰일났소. 지금 항장이 검무를 추고 있는데 노리는 것은 패공이오.”

“그래요. 그럼 나도 함께 들어갑시다. 패공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한판 붙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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