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홍문에서 연회가 베풀어지는 동안 범증은 항우에게 유방을 바로 죽이라고 여러 차례 신호를 보냈는데도 모른 체 하였다. 범증은 밖으로 나가 항장을 불러 검무를 추면서 유방을 죽이라고 지시하였다. 항장의 춤에 살기를 느낀 항백이 나서서 함께 검무를 추면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사태를 알아차린 장량이 군문 밖에 있는 번쾌를 연회장으로 불러 들였다. 

번쾌는 곧장 칼과 방패를 준비하여 군문 안으로 들어갔다. 앞을 가로막은 위병 두 명은 번쾌의 방패에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연회석으로 들어선 번쾌는 항우를 노려보았다. 머리칼이 곤두서고 부릅뜬 눈은 당장 찢어질 것처럼 무서운 모습이었다. 항우는 얼결에 칼을 움켜쥐고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렀다. 

“웬 놈이냐?”

장량이 나서 대신 대답하였다. 

“패공을 따라온 번쾌라고 합니다.”

“대단한 사나이로군. 그에게 술잔을 주어라.”

항우의 명령에 수하가 큰 잔에 술이 넘치도록 가득 따라 번쾌 앞에 놓았다. 

번쾌는 무릎을 꿇고 그 잔을 받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항우가 돼지의 어깨죽지 날고기 다리 하나를 번쾌에게 내렸다. 번쾌는 방패 위에 돼지 다리 한 짝을 얹어 놓고 칼을 뽑아 베어서 말끔하게 먹어 치웠다. 

“과연 장사로다. 어때 한 잔 더 하지!”

항우의 말에 번쾌는 기꺼이 그 청을 받아들였다. 

“예, 술 두 잔 따위를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그러나 마시기 전에 대왕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진나라 왕은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으며 사람도 많이 죽였고 잔인한 형벌에 억울한 자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천하가 다투어 반기를 든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초의 회왕께서는 여러 장수들 앞에서 진나라를 무찌르고 함양에 먼저 들어온 자를 관중의 왕에 봉한다고 약속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함양에 들어온 것은 바로 패공입니다. 더구나 패공은 진나라의 재물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궁궐을 수비하는 조치만 취하였을 뿐이고 군사를 패상으로 후퇴시켜 대왕께서 도착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함곡관의 수비를 굳게 한 것도 도적의 침입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패공의 이런 공로에 상을 주시기는커녕 소인배들의 모략중상을 믿으시고 도리어 패공을 살해하려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일은 진나라 왕과 다를 것이 뭐가 있습니까? 설마 대왕의 진심은 아니시겠지요?” 

말을 마친 번쾌는 장량 옆으로 가 앉았다. 

잠시 뒤 패공 유방은 화장실을 다녀 올 뜻을 전했다. 번쾌도 그를 따라 자리를 떴는데 두 사람은 나가더니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다. 항우는 도위 진평에게 명령하여 어떻게 된 일인지 나가 알아보도록 했다. 

유방은 화장실을 핑계대고 나온 뒤 바로 군문 밖을 빠져 나온 것이었다. 그는 번쾌에게 말했다. “항왕에게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나와 버렸소. 어찌하면 좋겠소?”

“큰일을 앞에 두고 작은 일에 구애될 수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도마 위에 오른 생선이나 다름없습니다. 목숨이 위태로운 때에 작별 인사 따위를 어떻게 갖추겠습니까?”

유방과 번쾌보다 조금 뒤에 따라 나온 장량이 물었다. 

“항왕에게 줄 선물은 무엇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항왕에게 백벽 한 쌍과 범증에게는 옥두 한 쌍을 가지고 왔소. 가지고 오기는 했으나 저 사람들이 워낙 시퍼렇게 굴어서 내놓지를 못하였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소?”

항우가 포진해 있는 홍문과 유방이 포진한 패상과의 거리는 불과 40리였다. 유방은 자신이 타고 온 수레와 경비병을 그곳에 놓아둔 채 혼자 말을 달렸다. 번쾌, 하우영, 근강, 기신 네 사람은 칼과 방패만을 들고 뒤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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