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진나라의 남양 군수 기는 패공 유방의 공격을 받아 패하여 완 땅으로 도망쳐서 머물고 있었다. 패공은 완 땅을 그대로 두고 관중으로 들어 갈 경우 후미가 염려스러웠다. 유방의 군사가 완을 총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집결시키자 남양군수 기는 진희를 사자로 보내 유방에게 귀속하고 은후 작위를 받는다. 한편 항우는 송의를 죽이고 상장군의 지휘를 빼앗고 모든 장수와 경포까지 손에 넣고 진나라의 장군 왕이를 무찌르고 장한까지 항복시키자 모든 제후들도 그를 따르게 됐다. 

진나라 재상 조고가 호해 황제를 죽이고 유방에게 관중을 둘로 나누어 먹자는 제안에 패공은 음모가 숨어 있다고 판단하고 진나라로 들어가 남진의 남쪽에서 진나라군과 싸웠다.

]패공은 군대의 기치를 많이 만들어 세우고 대군처럼 보이게 하고 물자의 약탈이나 인부의 징발 등 모든 민폐를 엄중하게 금했다. 그 때문에 인심은 돌아서 진나라군의 사기는 급속하게 떨어져 패퇴하고 말았다. 그 뒤 진나라군은 남진의 북쪽에서도 대패하여 결국 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한나라 원년(기원전 206년) 10월에 패공은 제후들을 앞질러 항양 근처인 패상에 이르렀다. 

호해 황제가 죽임을 당한 뒤 진나라 왕에 올랐던 자영이 지도성 근처까지 나와 패공을 맞이했다. 백마가 이끄는 흰 수레를 타고 나와 목에 밧줄을 걸고 손에는 황제의 옥새와 부절을 넣은 봉인된 상자를 들고 항복의 예를 정식으로 나타내었다. 

패공의 부장들 가운데는 진나라 왕 자영을 죽일 것을 주장하는 자도 없지 않았지만 유방은 만류했다. “회왕이 나에게 서쪽을 정벌하라고 명령한 것은 나라면 적일지라도 관대하게 취급하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더욱이 적은 이미 우리에게 항복을 했다. 항복한 자를 죽인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결국 진왕은 연금해 두기로 하고 패공은 그 길로 곧장 함양으로 들어갔다.

패공은 황궁을 점령하고 그곳에 본부를 설치하려고 했으나 장량과 번쾌가 적극 말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진나라의 보물을 모아 둔 곳간에 봉인한 뒤 패상으로 물러갔다. 

패공은 여러 현의 장로와 유력자들을 불러 모아 그 자리에서 말했다. 

“여러분은 오랫동안 진나라의 학정에 시달려 왔습니다. 나랏일을 비판했다가는 일족이 몰살당해야 했고 길에서 쑥덕거리기만 해도 잡혀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저잣거리에서 머리를 잘렸습니다. 우리는 제후들과의 약속에 의하여 관중에 제일 먼저 들어온 자가 왕이 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관중의 왕은 바로 나입니다. 왕의 자격으로 나는 여러분과 약속합니다. 우선 법은 세 가지만 정합니다. 즉, 사람을 죽인 자, 사람을 다치게 한 자, 도둑질 한 자는 바로 처벌하겠습니다. 진나라가 정한 모든 법령은 이 자리에서 모두 폐지합니다. 관민이 함께 앞으로 편안하게 지내시기를 부탁합니다. 우리가 관중에 들어온 목적은 여러분들을 위하여 학정을 없애는 데에 있었습니다. 결코 난폭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나 안심하십시오. 또한 우리 군사가 다시 패상으로 철수한 것은 여기서 제후들의 도착을 기다려 그들과 정식으로 상의하기 위한 것일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패공은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진나라의 관리들과 함께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백성들에게 자신의 뜻을 널리 알리게 했다. 

진나라 사람들은 환성을 올리며 패공의 군사들을 대접하기 위해 앞을 다투어 소, 양, 술, 음식들을 가지고 왔으나 패공은 정중히 거절했다.“우리는 군량도 충분하고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희들을 생각해 주시는 것은 고맙지만 사양합니다.” 그렇게 되자 패공에 대한 소문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백성들 사이에는 그를 왕으로 추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 패공에게 말했다. 

“관중은 중원의 열 배의 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지형도 험준하여 요새입니다. 그런데 들리는 소문으로는 진나라 장한이 항복했을 때 항우가 그를 옹왕에 임명하여 관중의 왕으로 삼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들이 만일 이곳으로 들어온다면 패공께서 관중을 차지하시기는 어렵게 될 줄 압니다. 이때에 패공께서 함곡관으로 군사를 보내 그곳을 굳게 수비함으로써 제후들이 관중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관중에서 군사를 뽑아 병력 증강에 힘쓰시면 제후들이 들어오는 것도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패공은 그 말에 즉각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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